오광수 이중섭미술관 명예관장·논설위원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이 시는 박목월의 시 <나그네>의 전문(全文)이다. 이 시는 친구였던 조지훈이 박목월에게 보내온 시 <완화삼(玩花衫)>에 대한 답 시이다. 박목월·조지훈·박두진, 이 세 사람을 일컬어 문학사에서는 삼가시인(三家詩人)이라고 한다. 이들이 처음으로 묶은 시집을 <청록집(靑鹿集)>이라고 하는데, <청록집>이라는 제명은 박목월의 시 <청노루>에서 따온 것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들은 청록파(靑鹿派)로 불리기도 한다. 조지훈이 박목월에게 보내온 시 <완화삼>은 이렇다. 

차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리 /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술익는 강 마을의 저녁 놀이여 /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양 하여 / 달 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정감이 우러나는 우리 옛 사람들의 시적 표현

조지훈의 시에서 보이는 느긋함과는 대조적으로 박목월의 시는 긴박하다. 같은 술 익는 강마을을 지나게 되지만 조지훈의 나그네는 이미 잘 익은 막걸리 한 사발을 걸친 것이 분명해 보인다. 달 빛 아래 흥얼흥얼 걷는 모습이 여유롭기만 하다. 이에 비해 박목월의 나그네는 어쩐 일인지 급하기만 하다. 외줄기 남도 길을 서둘러 가는 나그네의 행장(行狀)은 불타는 저녁놀로 인하여 더욱 절박한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잘 익은 술 냄새가 코에 스미는데 나그네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가기만 한다. 구름에 달 가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 시의 빼어난 구절은 바로 <구름에 달 가듯이>이다. 실은 달이 그렇게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구름이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 것인데 거꾸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달을 비껴 구름이 달리듯'이라고 해야 옳은 데 말이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말하면 맥이 빠지고 시적 감흥이 떨어진다. 달이 구름 속을 달려가야 더 실감이 난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실감이 나는 것이다. 거짓말도 때로는 유쾌하고 진실보다 더 진실 되게 보인다. 속임수가 때로는 사람을 더 즐겁게 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속았다고 흥분하거나 시비를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표현이 다른 나라에도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말을 쓸 때마다 시적 정감에 젖게 된다. 우리 옛 사람들의 시적 정감이 얼마나 풍부한지를 절감하게 된다. 

착시현상이 만드는 경이로움, 회화적 진실

세잔이 그린 사과는 흔히 실제 사과보다 더 사과답다고 한다. 그 윤기 나는 사과의 모습은 현실의 사과를 능가하고도 남는다. 현실의 사과보다 그려진 사과가 더 사과답다고 하는 것은 일종의 착시현상에서 오는 시각적인 경이로움, 시각적인 즐거움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세잔의 화폭 속의 사과를 끄집어내어 먹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그것이 현실의 사과보다 더욱 먹음직스럽게 보이니 말이다.

김창열이 그린 물방울도 실제 물방울보다 더욱 물방울답다고 한다. 김창열의 물방울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진짜 물방울인가 하고 슬쩍 손가락을 대어보기도 한다. 물론 손이 가도 물방울은 흘러내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것을 진짜로 착각한다. 착시현상이 만드는 경이로움의 결과인 것이다. 현실의 물방울을 보고 놀라거나 경이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것이 그려진 물방울이기 때문에 놀라는 것이다. 이것을 흔히 회화적 진실이라고 한다. 달이 구름 속을 달린다 해도 누구 하나 시비하지 않듯이 그려진 사과가 더 사과답다고 해도, 그려진 물방울이 더 물방울답다고 해도 아무도 시비를 하지 않는다. 시적 경이로움에 의하여 또 하나의 진실의 순간을 맛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