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수 제주관광대학교 기획부총장·논설위원

탑동광장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임시 가설된 단상위에 옷소매를 걷어붙인 하얀와이셔츠 차림의 후보가 나타나 대규모 유세전으로 상대방에게 막판 총공세를 펼칠 준비를 한다. 현란한 서치라이트 아래서 땀을 흘리며 자신의 공약과 성과를 내뱉으며, 지지를 호소한다. 배지근한 제주의 돔베고기다운 걸쭉함과 따뜻함으로 인간적인 호소를 하는가 하면, 톡쏘는 듯한 맛깔스러운 자리젓갈의 향기로 상대후보를 공격하면서 청중들의 박수를 끌어내고 있다. 한손으로 땀을 훔치면서 한손으로는 제주도민의 자존심을 건드리면서 제주도민들의 표심을 빨대로 빨아들이듯 연설하고 있다. 마치 배우와 관객이 된 듯한 흥미진진한 광경이 쏟아지고 있다.     

불과 20년 전후의 제주도지사 후보의 선거유세전이었다. 지켜본다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했고 투표한다는 자체가 바로 도민의 자존심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당선자도 탈락자도 모두 박수를 받았고, 선거에서 졌다고 해서 제주를 떠나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지역에 남아 역할을 하면서 권토중래(捲土重來)하는 모습이 우리를 든든하게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세월과 함께 정치와 선거의 패러다임의 바뀌면서 이런 모습이 점차 사라져 버렸다.

대규모 유세전을 미디어토론회가 대체하게 되고, 지지를 호소하는 정서적인 유세전을 검증토론회가 대신하게 되면서, 언제부터인가 선거는 후보자 간의 비방과 폭로전, 고소와 고발, 팩트의 싸움으로 비화하게 되었다. 

이렇다보니 제주도민들은 후보자의 정책과 지역을 위한 공약을 듣는 기회보다는 후보자간 상대방의 도덕성과 사실검증을 밝히는 말싸움을 듣는 경우가 많아 개인적인 관심은 점차 쇠락해지면서 피로감을 느끼게 되었다. 또 이런 선거문화가 점차 자리를 잡다보니 승리자만 제주에 남고 패배자는 제주를 떠나고, 또 사람은 없고 조직만 남는 현상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이 얼마나 인력 손실이고 제주 괸당들의 허망함인가! 

우리는 후보들이 탑동이든 윌드컵 경기장이든 간에, 대규모 광장에서 자신의 정책과 공약을 열정적으로 조리있게 피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흐르는 땀 속에서 제주의 미래를 보고 쉰 목소리를 들으며 제주의 의지를 확인하고 싶다. 지역의 원로와 청년, 남녀노소가 함께 앉아 열광하며 공감하고, 후보의 든든한 열정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

비록 4차 산업혁명시대를 코앞에 둔 때라고 하지만, IT와 SNS를 통해 공약을 알리기보다는, 또 멋지게 분장을 하고 방송 카메라 앞에서 표정을 관리하는 모습을 보기보다는, 바람불고 비가 오는 험난한 유세전에서 지지자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는 후보의 진정한 모습을 보고 싶다. 또 패한 자가 떠나지 않아도 되는 포용의 선거문화를 보고 싶다. 앞으로 남은 10여일 동안, 상호비방보다는 정책을 제안하고 공약의 진정성을 호소하는 후보의 듬직한 모습이 대규모 유세전에서 있기를 희망한다. 그야말로 보기 좋은 제주 선거문화의 르네상스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이번 도지사선거에 도전하는 후보들은 여러 면에서 그 어느 때 보다 제주를 대표할만한 훌륭한 면모와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이번 선거에 임하는 후보들이  진정으로 제주를 사랑하는 지성인이자, 제주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어제까지의 난타전을 오늘부터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유권자들이 공정한 선택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비록 20년 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연호하며 지지했던 한편의 드라마를 또 한 번 보고 싶은 것이, 조직선거보다는 사람들의 만남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휴머니스트적 사고를 가진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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