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54주년. 반세기가 지났지만 4·3의 감회는 매년 새롭게 다가온다. 4·3은 분명 우리의 역사 속에 간직해온 아픈 과거며 현재다. 해원의 기본틀인 4·3 특별법이 제정된 지도 2년여가 지났다. 하지만 눈에 띌 만한 진전은 없는 듯 하다. 오히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지난달 확정한 "희생자 기준" 때문에 어수선하다.

기준의 핵심은 희생자 가운데 남로당 제주도당의 핵심간부와 군·경 진압에 주도적으로 항거한 무장대 수괴급 등은 제외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기준은 진상 규명도 하기 전에 4·3의 성격을 예단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앞뒤가 바뀐 것이다.

특히 도민들 사이에 반목과 갈등을 조장해 공동체를 파괴하고 진상 규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데 주목한다. 희생자 가족들은 가해자의 처벌이나 배상과 보상에 집착하기 않고 있다. 다만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보다 무게를 두고 있다. 때문에 이데올로기 잣대로 희생자를 걸러내는 것은 화해와 상생 이라는 특별법의 취지에 어긋난다.

그러나 일부 언론과 단체 등은 헌법재판소의 일부 의견을 들어 희생자 제외 대상을 확대해석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는 등 진상규명 작업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정의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4·3 에서 이데올로기의 벽을 허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과 가치를 확인하는 것이 화해와 상생이라는 4·3 특별법의 정신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함으로서 4·3이 분단의 아픔을 넘어 통일조국의 초석이 될 수 있다.

아픈 과거를 잊지 않고 평화의 섬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것이 우리들에게 남겨진 도덕적 소명이다. 이념의 벽은 4·3 해원의 걸림돌일 뿐이다.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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