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편집부장 대우

1858년 미국 일리노이주 출신 연방 하원의원인 링컨과 고참 상원의원인 더글러스가 노예해방 여부과 연방 유지 문제를 두고 토론을 벌였다. 링컨과 더글러스의 주장은 달랐지만 모두 국민적 관심을 바탕으로 정치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의 토론은 유력신문에 연설 전문이 게재돼 많은 이슈와 국민적 관심을 낳았으며 이는 '대토론(The Great Debate)'이라 불렸다. 일부에선 대토론을 TV토론의 모태로 보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TV토론은 언제 시작됐을까. 1948년 미국 공화당 당내 경선 중 오리건주에서 첫 TV토론회가 열렸다. 이후 1960년 세계 최초로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케네디와 공화당 닉슨의 TV토론이 열렸다. 닉슨은 여론조사에서 토론직전까지 케네디에 대한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식은땀을 흘리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젊고 패기 있는 모습을 보여준 케네디에게 밀리면서 이후 경선에서 패했다. TV토론의 대중적 파급력을 보여준 일대 사건이었다. 또 1988년 조지 부시와 마이클 듀카키스의 토론 역시 흥미롭다. 메사추세츠주 주지사였던 듀카키스는 사형제도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었는데 사회자였던 버나드 쇼의 질문에 의해 대선 결과가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신의 아내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범인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듀카키스는 주저없이 "사형제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듀카키스는 '인간적인 모습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 시작했고 유권자들에게 '아이스맨'으로 불리며 대선에 패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 제1회 지방선거때 후보 TV토론회가 처음 실시됐다. 또 대통령 선거에서는 1997년 제15대 대선때 공식 도입되면서 매스미디어 선거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오는 13일 치러지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군소정당 후보 배제나 참석 여부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등 TV토론을 둘러싼 잡음이 일고 있다. 공직선거법이 강화된 요즘 TV토론은 유권자가 후보자를 검증할 수 있는 주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제대로 된 검증을 위해서는 후보들의 정치 공방이 아닌 정책·공약 위주의 토론문화가 정착돼야 하고 유권자들의 꼼꼼한 평가가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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