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4·3’54주기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 시행된지도 만2년이 지났다. 그러나 4·3의 원혼들은 여전히 영면에 들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자신들의 죽임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원의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4·3진상조사보고서 작성 작업의 진행 상황 등을 점검해 본다.

△추진 일정=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발간은 제주4·3특별법에 의해 2003년2월로 규정돼 있다. 4·3특별법은 4·3위원회 구성을 마친 날로부터 2년 이내에 4·3 관련자료의 수집 및 분석을 완료하고, 이로부터 6개월 이내에 4·3진상조사보고서를 작성토록 하고 있다.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 이한동 국무총리)는 이에따라 지난 2000년8월 구성 직후 희생자 심의·결정 절차와 병행,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단장 박원순 변호사)을 설치하고 진상조사보고서 작성 작업에 착수했다.

 기획단은 진상조사보고서 작성 작업을 3단계로 구분, 추진하고 있다. 기획단은 1단계인 2000년 9월부터 12월까지 국내외 4·3 관련 자료 목록을 작성했다.

 기획단은 이어 2001년1월부터 2단계 작업에 돌입, 오는 8월까지 자료의 수집·분석과 전산입력을 완료하는 한편 주요 쟁점에 대한 토론도 마무리, 정리할 계획이다. 기획단은 6월이전 조사보고서 편찬세부계획 및 목차 선정과 각종 자료·증언록 등을 종합 정리한 후 7월부턴 분석·토의를 시작한다.

 기획단은 이어 3단계인 진상조사보고서(안)의 본격적인 작성 작업을 9월에 시작, 내년 2월말까지 완료한 뒤 3월 보고서를 발간한다는 방침이다. 

△자료 수집=기획단은 박사급 전문위원 5명과 조사요원 10명을 채용하는 한편 미·일·러 등에서 현지 전문가를 활용, 국내외에서 자료 수집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3일 현재 기획단이 국내외에서 발굴, 수집한 자료는 문헌·사진 등 총 1250종에 9900건(5만매)에 이르러 일단 양적인 면에선 합격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내의 경우 국회·통일부·정부기록보존소·육군본부·기무사령부·군사편찬연구소·중앙도서관 및 언론기관 등을 대상으로 자료 수집을 완료했으며 경찰청 및 제주경찰청과 국방부·해군본부에 대해선 작업이 진행중이다.

 정부기록보존소에선 국법회의 수형인 명부 2530명을 비롯, 행방불명됐던 4·3사건 수형인 60명의 사망장소와 경위를 밝혀주는 자료를 입수했으며 군 관련 기관에선 4·3 당시 작전명령·부대계보·제주파견부대 일지 등을 확보했다.

 이와 함께 4·3 관련 생존자중 군·경, 무장대, 우익·좌익단체 임원, 주요사건 관련자 등 500명을 선정, 당시 상황과 사실여부에 대한 채록도 진행중이다.

 국외에선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등을 6개월에 걸쳐 집중 조사, 800건 1만매를 찾아내는 한편 당시 주한미군사령부 정보참모부(G-2)·작전참모부(G-3)보고서, CIA 및 CIC 문서와 미군 지휘관 현지보고서 등도 입수했다.

 이와함께 러시아에선 4·3당시 국제정세에 대한 문서를, 일본에선 4·3연구학자의 저서 및 개인자료를 수집했으며 대만·남아프리카공화국·스페인 등에선 ‘과거청산’유사사례 자료를 확보했다.

 이러한 양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경찰 소장 자료 수집이 극히 부진, 기획단이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측에서 지난 80년 연좌제 폐지 당시 4·3관련 자료를 폐기 처분했다고 밝히고 있어 자칫 자료가 미흡, 반세기 만에 화해와 상생을 위해 제정된 특별법에 의한 진상보고서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4·3진상보고서=기획단의 모든 작업이 마무리된 뒤 2003년3월초 발간될 예정이다. 보고서의 형식이나 크기(volume) 등 개괄적인 얼개는 오는 8일 개최되는 4·3기획단 회의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기획단내 실무 전문가 집단인 전문위원들이 초안을 만들고 기획단 회의를 거쳐 보고서(안)이 결정된 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4·3위원회의 심의·의결을 통해 확정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발간되는 4·3진상보고서는 ‘4·3의 진실’에 대해 국가가 공인하는 ‘증거’로서, 반세기 동안 억눌려온 4·3 해원의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걸림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실한 경찰측 자료와 성우회를 비롯한 ‘우익세력’과의 논란 등이다.

 기획단은 경찰측이 자료폐기를 주장함에 따라 전·현직 경찰 등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을 자료 발굴에 나섰다. 4·3의 진실 규명을 위한 적극적인 협조 등 자료 소장자들의 역사의식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그리고 우익과의 논란은 4·3특별법의 정신에 따라 풀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은 물론 제주도민들의 의견이다. 이들은 4·3을 특별법(제2조)에 명시돼 있는 대로 ‘1948년4월3일을 전후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보면 논란의 소지가 있을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별법에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돼 있는 만큼 진상규명을 하되 주민들이 어떻게 희생됐느냐는 인권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 접근하면 된다는 지적이다.

 또 4·3보고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선 제주도민들도 특별법 제정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내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보고서가 나오는 그 순간까지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할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4·3보고서는 우리의 과거보다 미래를 위한 ‘국가문서’이기 때문이다.<서울>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