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립 김창열 미술관 9월 30일까지 '두 개의 물방울처럼'
김창열 화백 화풍 시기별 대표작 25점…작가적 삶 사유

빗방울이 연잎에 고이면 연잎은 한동안 물방울의 유동으로 일렁이다가 어느 만큼 고이면 수정처럼 투명한 물을 미련 없이 쏟아 버린다. 이런 광경을 무심히 지켜보면서,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무게만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비워 버리는구나 하고 그 지혜에 감탄했다는 법정 스님의 유고를 꺼내 본다. 김창열 화백의 작품 세계를 '물방울'을 따라 가는 길이다.

1일부터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두 개의 물방울처럼'은 김 화백의 작품세계를 시대별로 조명했다.

'물방울 화가'로 세계적 명망을 얻었지만 물방울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은 고단했다. 김 화백의 화풍은 한국전쟁의 상처를 드러낸 앵포르멜(Informel) 시기, 4여년 미국 뉴욕 시기, 프랑스 정착 초기부터 물방울의 탄생을 선언하는 회귀(回歸) 시리즈 등으로 나뉜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맺히거나 또 흐르는 물방울을 구현하고 있다.

초창기 거친 붓질과 두꺼운 마티에르는 6·25 전쟁으로 중학교 동기 120명 중 60여명과 어린 여동생의 죽음을 경험한데서 비롯된다. 기억할 수밖에 없는 비극에 저항하는 외마디 비명을 품은 화폭이 펼쳐진다.

미국 뉴욕 생활에서 판화를 전공하면서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김 화백은 프랑스 정착 후 첫 개인전(1973년)에서 '물방울'을 탄생시킨다. 가난했던 탓에 캔버스를 몇 번이고 재사용하는 과정에서 작업을 위해 뿌렸던 물이 방울져 반짝이는 것을 본다.

1986년 이후 천자문과 물방울의 조화를 보여주는 회귀 시리즈는 아팠던 과거 이전 유년시절의 동경으로 보다 자유롭고 편안하다. "환갑이라는 것이 어찌 보면 인생의 한 고비를 넘기는 시점인 만큼 그걸 지나면 다시 태어나고, 또 새로 시작하고,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그의 말은 법정 스님의 생각과 맞물린다. 전시는 9월 30일까지. 시대별 주요작품 25점을 엄선했다. 문의=710-3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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