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제주국제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논설위원

아날로그 시대가 저물고 디지털 시대가 이미 열렸음을 절감할 수 있었던 사건. 바로 100년 넘는 시간을 필름카메라로 이름 떨쳤던 코닥이 디지털카메라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2012년 파산신청 했을 때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100년 이상을 잘 버텨온 기업들의 부침이 가장 심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예상치 못했던 변화의 방식으로 대응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나일론을 개발한 200년 넘는 역사의 듀폰은 자신의 브랜드를 세계적으로 알린 나일론의 섬유산업부문을 매각했고, 132년 역사의 코카콜라는 알콜음료인 맥주를 출시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성장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기업의 운명은, 시장에서 자신을 증명해 보여야 인정받을 수 있기에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때 세계 최고의 시장점유율로 핀란드 경제의 25%를 차지하던 노키아의 휴대전화 사업부문의 몰락은 핀란드의 경제성장률을 추락시키고 말았다. 하지만, 핀란드는 창업 붐을 일으키고 산업체질을 개선하면서 높은 실업률을 해소하고 있다. 또한, 4차산업혁명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직업교육으로 전환하는 교육정책에 집중하면서 위태롭던 산업생태계를 회복시키는 중이다. 

이처럼 위협요인이 도처에 널려있고 누구와 경쟁하고 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은 시대에, 자신을 버림으로써 자신을 성장시켜가는 기업의 적응방식이 신선하다. 달리기를 할 때 뛰다보면 숨이 멎을 것처럼 고통스러운 순간인 데드 포인트(dead point)가 찾아오지만, 이 과정을 참고 넘어서면 자신이 숨을 조절할 수 있는 편안한 상태(second wind)가 된다고 한다.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깨지 않으면 결국 도태되고 마는 기업생태계의 원리는 자연이나 인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한국어 앨범으로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방탄소년단이 화제다. 단지 실력이 출중했다고 주어지는 자리가 아니기에 팬과 소통하면서 음악을 유통시킬 줄 아는 그들의 전략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방송출연조차 어려웠던 무명의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뮤지션으로서 바람직하게 버티는 힘이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결과여서 더욱 감동적이다.

물론 그 이전에 케이팝(K-pop)을 세계적 문화로 수용할 수 있도록 많은 작업이 이루어졌기에 한국 뮤지션에 대한 인정이 가능했다. 이처럼 안팎으로 오랜 시간 축적된 수많은 시행착오와 도전의 결과이기에 더 소중하고 자랑스럽다.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메를린 울브라이트는 자서전에서 '우연이란 축적된 필연의 결과'라고 했다. '어느날 갑자기' 원하는 것을 얻어지는 순간은 존재하기 어렵고,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필수적으로 수반될 때 우연처럼 얻게 됨을 역사의 순간마다 깨달았을 고뇌의 무게가 전해온다. 다행히 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이 반복될 때는 언젠가 긍정적인 영향력을 취하게 된다는 일깨움이 위로가 된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변화를 요구하는 중요한 시기에 우리의 미래를 담보하는 지방선거가 바로 앞이지만 기대와 설렘이 제대로 느껴지질 않는다. 제주의 미래를 책임질 후보자들의 공약은 늘 봐왔던 내용이고, 오히려 공약보다 상대에 대한 비방으로 눈과 귀를 어지럽힌다. 그동안 다양한 영역에서 축적해왔던 우리 모두의 노력이 더 좋은 제주를 만드는데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지 제시하지 못함이 우려스럽다.  

제주야말로 전환기이고, 전환기는 곧 위기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내부에서 외부를 향해 새로운 시도를 축적해야만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다. 마음을 모아야 할 때 제주의 미래전략이 분산되어 보이는 것은 나의 기우(杞憂)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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