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경 제주국제대학교 호텔관광학과 교수·논설위원

누가, 왜 행복한가?

행복에 대한 인간의 오랜 관심은 '삶의 최종가치로서의 행복'과 '살아가는 도구로서의 행복' 사이에서 진자운동을 해왔다. 미래, 더 나아가 다음 생을 위한 행복인가. 아니면 행복에 비틀거리는 일상인가. 최근 과학을 통해 확인된 내용은 '행복이 생존을 위한 인간 진화의 산물'이며 작은 행복을 자주 발견하는 것이 삶의 동력이고 이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오후의 햇빛이 나뭇잎 그림자를 그리는 걸 바라보며 브람스의 실내악을 듣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 

1986년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제안한 '작지만 확실하게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복도구들이다. '소확행(小確幸)'은 당시 일본의 장기불황과 경기침체, 그리고 가속화된 개인주의가 만들어낸 소비 흐름이었다. 하지만 '순간을 잡고 현재를 즐기라'는 로마 서정시인 호라티우스의 '카르페디엠(Carpe Diem)' 선언이나, 그리스 철학자이자 신중한 쾌락주의자였던 에피쿠로스식 행복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지향하는 에피쿠로스의 충고는 간단하다. 욕구를 버려라! 갖지 못한 것에 집착하면 마음만 상하고 그나마 갖고 있는 것도 잃게 된다, 설사 원하는 것을 갖게 돼도 또 뭔가를 다시 원하게 되는 욕망의 쳇바퀴에 갇혀버린다는 것이다. 결국 현재를 살지 못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완벽주의 때문이고, '다음은 뭘까? 저 사람은 뭘 가졌지?' 정작 삶을 살지 않고 살아갈 준비만 하는 우리들에 대한 질책이다.

2018년 3월 발표된 유엔의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핀란드가 1위,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가 그 뒤를 이었고, 스웨덴도 9위에 올라 북유럽 국가들이 수위를 차지했다(한국은 57위). 이들 북유럽 국가들의 공통점은 한마디로 일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덴마크의 '휘게(Hyggee)'는 '웰빙'이라는 노르웨이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덴마크의 복지시스템과 교육의 질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작지만 따뜻한 일상이 주는 행복의 추구'이다. 퇴근 후 자기만의 공간에서 차 마시며 영화를 보거나, 홀로 떠나는 여행에서 미슐랭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가족들과 함께 음식을 준비한다. 스웨덴의 '라곰(Lagom)' 역시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적절하고 단순하며 소박한 절제의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고 있다. 북유럽은 아니지만 프랑스의 '오캄(Au Calme)'도 여유롭고 편안한 삶 속에서 구름, 나무, 흔들거리는 나뭇잎을 보면서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하게한다. 이들 국가들의 높은 행복지수는 미래보다 지금이 소중하고, 특별함보다는 평범함이, 행복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를 중시한다.

'제주여행 왜 좋으세요?' '제주로 왜 이주하세요?' 공통적인 대답은 제주의 일상이 제공하는 '작은 행복'의 매력들 때문이란다.

저임금에다 불안정한 일자리, 민간 글로벌 기업 하나 없이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고 제조업 비중은 3%에 불과한 것이 제주 경제의 현주소다. '제주도민 행복지수'를 개발해서 적용해본다면 '작은 행복'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제주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이 될 것이다. 물론 '국민의 97%가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행복지수 1위 국가', 히말라야 산맥의 작은 왕국 부탄이 꼭 롤모델일 필요는 없다. 관광성장과 제조혁신경쟁력을 동시에 갖고 있는 유럽국가면 더 좋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