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제주인2세·조선적 연극인 김철의씨 14일 제주 땅
“슬픔·아픔 아닌 ‘함께 살아온 시간’전하기위해 왔다”

“슬픔·아픔 아닌 ‘함께 살아온 시간’전하기위해 왔다”
15~17일 제12회 4·3평화인권마당극제 개막 무대 올라

지년 2009년 이후 네차례나 입국거부를 당하며 조국.고향을 찾지 못했던 재일제주인2세 조선적 연극인 김철의씨가 14일 입국했다. 재일한국인 3세 최지세양(16.사진 왼쪽)과 김수진군(16)과 공항에서 활짝 웃고 있다.

“‘우리는 함께 살아 왔다’는 메시지를 가지고 왔어요”

제12회 4·3평화인권 마당극제를 통해 태어나 처음 고향 제주, 조국 대한민국의 땅을 밟은 재일제주인 2세 조선적 연극인 김철의씨(47·오사카)는 몇 번이고 웃고 울기를 반복했다. ‘이게 꿈인가’ 싶은 마음에 웃다가 ‘왜 이제야’하는 생각에 울었다. 고향·조국이란 단어를 확인한 감격에 울컥했고, 제주를 지키고 있는 핏줄을 만나 미소 지었다.

김철의씨가 태어나 처음 만난 '작은아버지' 김성진씨(72.사진 오른쪽)와 가족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자신의 극단 메이가 아니라 유닛 ‘하나아리랑’과 제주에 왔다. 단원들 중 가장 어린, 또 자신과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10대 재일한국인 3세 최지세양(16)·김수진군(16)과 동행했다.

제주국제공항을 나서면서 가슴 가득 제주를 들이마신 김씨는 “이것이 진정한 조국의 기운”이라며 감격했다. 유일하게 제주에 살고 있는 ‘작은 아버지’ 김성진씨(72)를 붙든 손에도 잔뜩 힘이 들어갔다. 서로 이날 처음 만났지만 어색함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일본에 남은 ‘형님’(김씨의 아버지 김인종옹)의 안부를 묻고 가까운 친인척에게 전화를 돌리며 김씨의 귀향을 축하했다. 몇 마디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다시 몇 마디 하다 부둥켜안기를 수차례. 주변에서 지켜보던 이들까지 눈가가 붉게 물들고 나서야 겨우 공항을 떠날 수 있었다.

작은아버지 김씨는 “몇 년 전에 겨우 연락이 닿았다. 목소리를 처음 들었는데 제주에 가지 못하게 돼서 죄송하다고 하더라. 그게 어째서 네가 죄송한 일이냐고 했다”고 말했다. 세상이 그랬었다.

김철의씨의 '첫 입국'은 놀이패한라산.제민일보가 공동주최하는 제12회 4.3평화인권마당극제를 통해 성사됐다. 김씨가 15일 개막공연에 앞서 유닛 하나아리랑 단원들과 사전 점검하고 있다.

처음 제주 무대를 꿈꿨던 것이 2008년. 2009년부터 네 번이나 입국 거부를 당했던 일은 이제 생각도 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여행증명서’를 받고 항공권 예약을 하고 출·입국 수속을 받는 일은 허무할 만큼 순식간이었다. 제주에서 일본인 단원이며 제일제주인 3세들이 소통을 위해 처음 배운 호칭은 ‘삼촌’이었다.

김씨는 “슬픔이나 아픔이 아니라 함께 살았던 시간을 고향에 드리기 위해 하늘과 바다를 건넜다”며 “지세나 수진이가 다음, 또 다음 이렇게 자유롭게 조국 무대에 설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꿈을 꿀 수 있게 도와준 모든 분들게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했다.

김철의씨가 이번 '첫 대한민국 입국'을 위해 발급받은 임시입국증명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제주까지 왔지만 ‘다음’은 장담하기 힘들다. 타국에서 신분이 불안정한데다 연극으로 생활하는 일은 생각만큼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이번 마당극제 참가도 주최측인 놀이패한라산이 참가경비를 지원하며 간신히 성사됐다. 극단 메이가 아닌 유닛 극단으로 참가한 것도 비용 문제가 컸다.

일본으로 돌아가 연습실 사용료부터 꼭 다시 서고 싶은 제주 무대를 꿈꾸기 위해서는 고향 제주의 관심이 절실한 상황이다. 제민일보가 나서 김씨를 응원하고 후원 창구의 역할을 맡은 이유기도 하다.

한편 놀이패 한라산과 제민일보가 공동주최하는 제12회 4·3평화인권 마당극제는 15일 김씨가 이끄는 하나아리랑의 ‘호라이즌 마치’를 개막 공연으로 17일까지 제주시탑동해변공연장 야외무대와 실내극장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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