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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담론] 통일 시대, 사람 사는 세상이광서 ㈜아이부키 대표·논설위원
이광서
입력 2018-06-26 (화) 18:13:04 | 승인 2018-06-26 (화) 18:13:59 | 최종수정 2018-06-26 (화) 18:13:59

집을 지으려면 먼저 마음에 드는 땅을 구한 다음, 주변과 어울리고 쓰임에 맞게 설계를 해야 한다. 설계가 잘 되면 기초를 다지고, 뼈대를 올리고, 내외부를 다듬어서서 완성한다. 설계를 잘 하는 일도 중요하고, 기초나 뼈대, 인테리어 모두 중요하다. 전과정이 다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일의 모든 과정에 똑같이 집중하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러한 주장은 무책임하다. 

집중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일머리다. 순서와 절차에 따라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집중하지 못하면 일머리가 안 맞게 되어 일을 그르친다. 

가령 집을 지을 때 맨처음인 기초와 뼈대 단계에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한다. 성급하게 일을 진행하다가 기초에서 약간의 오차를 용인해버리면 뼈대가 올라간 후에 그 오차는 엄청난 시간과 자원을 써야 하는 수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시간이 들더라도 기초에서 오차가 적어야 치장하는 일에서 자유로워진다.

무릇 사람의 일은 순서, 즉 일머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노련한 목수가 하루종일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연장만 다듬더니 해 저물자 뚝딱 일을 해치우더라는 이야기가 있다.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일은 나중이다. 한 치의 오차가 없는 준비가 필요한 일은 겉으로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일머리를 아는 노련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만질 수 있고 눈에 보이는 건물은 그 전문성을 충분히 인정해서 건축사나 공사 전문가가 되기 위해 까다로운 공부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를 구축하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 중요성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다. 우리나라는 이제 시민사회를 형성하는 초기 단계이기에 보이지 않는 이 영역의 중요성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공동체 영역도 그 무엇보다 전문적인 영역이며,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는 바로 '순서'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데서 구분된다. 초기 단계에서 사소한 차이가 생기면 나중에는 엄청난 에너지와 노력을 투입해도 관계가 회복되기 어렵다. 사회주택, 공동체주택이 제대로 발전하려면 집을 짓는 일과 함께 거기에서 벌어지는 공동체적 삶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국가는 '사람'이라는 실체로부터 출발한다. 문재인 정부는 헌법 개정안에서 국민 대신 사람을 국가의 근본으로 규정하려 하고 있다. 국민은 국가를 우선하고 사람을 그 다음에 두는 개념이기에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마찬가지로 모든 공동체는 '개인'으로부터 출발한다. 공동체를 잘못 이해하고 망치는 일이 흔한데, 바로 공동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개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함께 하려 하기 때문이다. 인간 존엄이라는 초석 위에서 국가가 비로소 바로 설 수 있는 것처럼, 공동체도 모든 구성원이 개인 영역에 대한 존중을 합의해야 건강해진다. 

지금 우리나라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환경 변화를 맞고 있다. 지난 수십 년을 지배한 냉전 이데올로기가 해체되고 있는 것이다. 분열과 대결, 전쟁의 위협이라는 도구로 마천루를 쌓아올렸으나, 그 공고한 벽과 드높이 쌓아올려진 타워는 이제 기초부터 흔들리고 있다. 전쟁의 공포를 앞에 내세워 사람 사는 세상을 뒤로 물려야 했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동이 트면 야만의 시대는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다. 

새로운 시대는 낡은 시대의 유산을 고쳐서 쓰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관점과 삶의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 존엄의 기초부터 다시 작업하는 일이다. 빈부 지위 학력 지역의 차별 없이 인간 존엄의 가치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스며들어야 번영의 초석이 잡히는 것이다. 통일과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위해 사람 사는 세상을 준비하자.

이광서  webmaster@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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