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영삼 UNITAR 제주국제연수센터 소장

갑자기 제주에 몰려 온 예멘 난민들 때문에 나라 전체가 난리 법석이다. 지난해 42명에 불과했던 제주 내 난민 신청자 수가 올해 561명으로 급증하다 보니 걱정이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내쫓아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한 지지 인원이 삽시간에 35만을 훌쩍 넘어섰다. 대통령이 상황 파악을 지시하고, 법무부가 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제주도청은 임시 취업을 알선하는 등 사안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중요하고 급박한 일일수록 일을 처리할 때에 정도를 따라야 한다. 그렇다면 난민문제 해결의 정도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지침서는 1951년 유엔에서 채택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이다. 우리나라도 1991년에 가입해 이 협약을 지킬 의무가 있다. 이 협약에 규정된 난민의 정의를 우선 살펴보자. 협약 1조에 따르면,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 소속, 정치적 의견 등을 이유로 박해 받을 우려가 있어 다른 나라에 피신한 사람'을 일컫는다.

제주에 온 예멘 난민 신청자 모두가 이 범주에 속하는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떠나온 나라와 해당 지역의 정세도 봐야 하고, 실제로 그러한 급박한 위험이 존재했는지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 형편이 좀 더 나은 나라에서 살아보려는 경제적 이주자, 즉 '가짜 난민'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또 만에 하나라도 과격 무장단체 요원이 섞여 들어오지는 않았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심사에는 보통 6개월 이상이 걸리는데 난민 신청자들이 갑자기 몰려들어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는 모를 일이다.

그동안 난민들은 어떻게 생계를 꾸려 나가야 하나. 제주도의 경우 정부가 관할하는 수용시설이 부족하여 비정부기구(NGO), 사회단체, 개인 가정, 여관 등에 분산 수용돼 있다. 난민들이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하여 적십자사, 제주도청 등이 인도적 구호에 나서고 있지만 이는 임시 방편일 뿐이다. 그래서 취업 제한 조치를 풀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후속조치로 무사증 대상국에서 예멘이 제외돼 당장 예멘 난민이 더 증가할 가능성은 없으나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세계평화의 섬 자격 논쟁과 직결될 수 밖에 없다.

난민 신청을 거부하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난민 인정 사례가 늘어날수록 우리나라로 오는 피난민들이 늘어나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현재 유럽이 처한 상황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난민의 어머니'로 불리는 메르켈 독일 총리가 100만명 수용 의사를 밝힌 후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유럽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그러나 목숨을 거는 위험을 무릅쓰다가 해상에서 조난되는 예가 허다하고, 유럽 도착 후에는 치안 악화, 문화적 마찰 등 여러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지적되어 난민 구호에 대한 유럽인들의 반응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최근 선거를 통해 다수 국가에서 우파 포퓰리즘 정부가 등장한 것도 난민 사태가 한몫을 한 셈이다. 독일의 경우 메르켈 총리의 연정 파트너인 기독사회당 제호퍼 내무장관이 "유럽 다른 나라에서 망명 신청을 했거나 신분증이 없는 난민은 입국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연정 파탄의 위기에서 '난민의 어머니'가 어쩔 수 없이 한발 물러서는 듯한 인상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매우 복잡하고 민감한 사안이라 선택지가 많지 않다. 우선은 난민협약 당사국으로서, 그리고 2012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한 국가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 난민들이 한국에 입국한 날부터 난민 인정 심사가 끝날 때까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을 따지기 전에 인도적 구호를 제공하는 것이 인간적 도리이기도 하다.

난민 지위 부여 여부를 결정하는 난민심사위원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실무를 담당하는 법무부 직원들의 일손이 모자란다. 아랍어 통역 요원도 많이 부족하다. 예멘을 비롯한 중동지역의 정세 파악도 쉽지 않은 과제이다. 그래서 대학이나 연구기관도 함께 도와야 한다. 우리나라가 난민 심사에 매우 인색하다는 국제사회의 비판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1994년 난민 신청 접수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20,361명에 대한 심사를 마쳤는데 이 중 4.1%에 해당하는 839명만이 난민으로 인정받는 데 그쳤다. OECD 국가들의 난민 인정률 37%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수치이다. 혹시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검토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원칙이 하나 있다. 난민협약에 따르면, 난민을 '어떠한 방법으로도 생명 또는 자유가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영역의 국경으로 추방이나 송환을 금지'하기로 되어 있다. 인권 선진국인 우리나라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원칙이다. 만약 이 원칙을 어긴다면 우리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예멘 난민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도를 따르되 균형된 시각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부작용을 고려하면 무턱대고 난민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선 난민협약에 따른 절차를 거쳐 심사를 진행하되 우리 정부가 제시한 조건이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지 살피고 심사 절차도 난민 신청자들의 처지를 감안하여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난민들이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인도적 구호 활동을 제공해야 한다. 일부 국민들 사이에 난민 혐오 정서가 퍼져 나가는 것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외세의 부당한 침략으로 인해 난민이 되어 외국으로 쫓겨난 슬픈 역사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세계평화의 섬 제주의 완성은 지혜롭게 난민사태 해결을 한 인권 선진사례도 요한다는 시대의 요청은 아닐까. 불법 이민자 부모와 격리 수용된 자녀들의 찢어진 가슴을 어루만지며 '국가는 모든 법을 준수해야 하지만, 가슴으로 다스릴 필요도 있다'고 말한 미국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여사의 일침이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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