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주최하고 제주4·3평화재단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공동주관으로 지난 2일 개막한 '한국 현대사 국제포럼'에서 올해 70주년을 맞은 '제주 4·3'이 화두가 됐다. 오는 6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포럼에서는 한국 현대사에서 4·3의 의미와 4·3 70주년과 통일비전이란 주제의 특강을 듣고, 한국 현대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에 대해 토론한다. 


서중석 명예교수.

"4·3 항쟁적 측면 재조명·연구 시급"
​서중석 명예교수 '한국 현대사에 있어 제주 4·3의 의미' 특강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3일 제주 4·3의 '항쟁적 성격과 의미'에 관심을 갖고 재조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3일 제주칼호텔에서 열린 포럼 개회식에서 '한국 현대사에 있어 제주 4·3의 의미' 특강에서 "제주 4·3 봉기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미 군정의 실정과 부패, 주민집단학살 등에 대한 항쟁적 성격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서 교수는 " "4·3특별법에서 제주 4·3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출동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고 정의됐다"며 "일부 항쟁적 성격이 엿보이지만 대규모 희생자 발생에 초점이 놓여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가 일어난 이후 토벌대가 본격적으로 초토화작전을 펴 중산간 마을에 불을 지르고 도처에서 주민집단학살을 자행한 것은 이승만 정부가 수립된 지 3개월만인 1948년 11월 중하순경부터다"며 "대부분의 4·3희생자는 이때부터 1949년 3월까지 약 4개월간에 걸친 초토화작전 시기에 생겨났다. 학살은 무장대에 의해서도 저질러졌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제주에서 국제적으로 엄격하게 금지돼 있는 주민집단학살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 △일본 군국주의의 인명경시사상 잔재 △우익청년단체, 특히 월남청년단체(서북청년단)의 반공주의와의 결합 △이승만 정부의 단독정부 노선과 엄벌주의 △외부와 차단된 섬이라는 특성 등을 꼽았다.

서 교수는 "미국의 역사학자 존 메릴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제주 4·3처럼 격렬한 민중반란이 분출됐던 곳은 어느 나라에서도 없었다'고 평가했다"며 "1947년 3·1절 시위에 대한 발포와 미군정의 처리, 3·10 관민 총파업 이후 미군정의 탄압과 경찰·월남 서북청년단의 횡포, 친일파의 발호 등 제주도민을 항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 교수는 제주도민 사회와 학계에 과제를 던졌다.

그는 "제민일보의 「4·3은 말한다」 등 4·3과 관련된 자료들은 대부분 1990년대 휘생 중심으로 증언을 받아 기록한 것으로 항쟁적 성격과 의미에 대해 물어본 것이 없다"며 "지금에 와서 (항쟁적 성격과 의미를) 물어보려고 하니 핵심 관계자 등이 없다. 그렇더라도 제주 4·3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항쟁적 측면을 여러 각도와 분야에서 연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찬식 센터장.

박찬식 센터장 '제주 4·3 70주년과 통일비전' 특강

박찬식 제주학연구센터장은 3일 "4·3치유의 제주정신이 이념과 분단을 극복하는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센터장은 '제주 4·3 70주년과 통일비전' 특강에서 "제주 4·3은 냉전시대 이후 세계 분쟁지역과 갈등경험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과거사 극복의 모범사례"라며 "공동체적 관용과 공존의 정신인 4·3치유와 제주정신을 세계화·보편화시킬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 세계평화의 섬 서명식에서 '제주도민은 평화를 가꿔온 역사를 가지고 있고, 4·3이라고 하는 역사적인 큰 아픔을 딛고 과거사 정리의 보편적 기준이라 할 수 있는 진실과 화해의 과정을 거쳐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실현했다'고 했다"며 "지극히 어려운 4·3해결 과정을 슬기롭게 헤쳐나간 제주도민의 화해·상생의 공동체성을 평화의 정신으로 인식하고, 이를 세계 보편의 가치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 센터장은 "제주공동체는 과거 4·3을 둘러싼 갈등·대립을 극복하고 미래지향적 가치를 만들어 내야 할 것"이라며 "현재는 특별자치의 완성과 미래에는 이념과 분단 극복의 모델로 4·3을 거론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제주 4·3 희생자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도 그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발설 자체가 금기시됐고, 민주화 시대에는 '억울함 죽음' '무고한 죽음' '영문없는 죽임'이라고 인식됐다"며 "미래에는 '공동체 발전과 민족 평화통일을 위해 대신 희생된 죽음'으로 의미와 가치가 있는 죽음으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주 4·3은 외적 탄압에 대한 제주도 공동체의 정서적 자치지향의 저항운동이자 단독정부 수립을 거부한 통일운동으로서의 역사적 의미가 있다"며 "남북·북미정상회담을 통해 6·25전쟁이 정전이 아닌 종전으로 선언되고 평화협정체제로 전환되기를 기대하며 제주 4·3이 한반도 평화통일의 진전 과정에서 진정한 자치공동체 건설과 통일 지향 현대사의 키워드로 기록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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