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필 제주관광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논설위원
초년등과(初年登科), 중년상처(中年喪妻), 노년 빈곤(貧困)을 흔히 인생의 3대 불행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피하고 싶은 불행은 노년 빈곤일 것이다. 그것도 병을 앓으면서 오래도록 살아야 하는 유병 무전 장수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기대수명 보고서에서 우리나라가 장수국 1위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노인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가장 높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졌다.
'가난하게 오래 사는 삶', 양립불가의 모순이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우리의 현실이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우리나라 노인 10명 중 9명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고 한다. '병을 앓으면서 가난하게 오래사는 삶'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지 모른다.
빈곤노인과 관련된 용어로 노후파산·노후난민이라는 말이 쓰이더니 하류노인이 등장했다. 노인복지 전문가이면서 빈곤퇴치운동을 하는 후지타 다카노리가 일본 빈곤노인들의 실태를 분석한 「2020 하류노인이 온다」라는 책이 발간되면서 빈곤노인의 또 다른 이름으로 불러지고 있다.
이책은 빈곤한 노인 혹은 현재는 빈곤하지 않더라도 모아둔 노후자금이 많지 않고, 수입부족, 중병에 노출, 독립하지 못한 자녀 뒷바라지 등 안정적 노후를 위협하는 위험인자를 지니면 하류노인이라 정의했는데 향후 일본 노인의 약 90%가 하류노인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리는 어떨까. 일본은 노인빈곤율이 약 28%인데 우리가 두 배 더 많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보건사회연구원에 의하면 2012년 46.9%에서 2016년 55.2%로 치솟았다. 지난해 국민연금 급여지급 현황을 보면 65세 이상 연금 수급자는 전체 노인의 39.2%에 머문다. 60%가 넘는 노인이 연금 없이 노후의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이다. 받는다 해도 지난해 기준 1인당 월 평균 36만8570원으로 생계비에 훨씬 못 미친다.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받는다. 그렇다고 머지않아 노인세대에 합류할 중장년층의 노후준비가 잘 돼있는 것도 아니다.
2016년 통계청 조사를 보면, 노후준비가 제대로 잘 되고 있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겨우 7.5%에 불과하다.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중장년은 우리 사회 주춧돌이고 가정에서는 가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 위로는 부모를 모셔야 하고 아래로는 자녀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 자녀 뒷바라지는 우리 사회의 청년실업이 워낙 심각하기 때문에 독립할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돌봐야 하는 현실이다. 앞으로도 자녀결혼 등 목돈 들어갈 일이 많지만 퇴직했거나 퇴직을 앞두고 있다. 노년이 다가 오고 있어도 자신의 노후를 준비 할 여유를 갖기 어렵다.
일본이 현재 겪고 있는 빈곤노인의 문제보다 우리가 훨씬 더 심각할 수 있지만 세계최고의 고령사회가 예정된 우리로서는 향후에는 더 이상 고령화에 대한 방안을 벤치마킹할 나라조차 없게 된다, 찾아볼 참고서조차 없다는 말이다.
대응방안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하지만 전문가들은 빈곤노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복지제도를 확충하는 한편 개인들의 노후준비도 필요하다고 오래 전 부터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노인에게 빈곤하지 않을 만큼 국가가 복지를 주고 개인도 스스로 빈곤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군들 모르겠는가. 그럴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니 국가도 개인도 답답할 노릇이다.
빈곤노인 모두가 처음부터 빈곤층이었을 리 없다. 적잖은 수가 중산층에서 갖가지 이유로 빈곤의 궤도에 휘말려들었을 것이다. 해법을 제시할 수없는 한계를 토로하며, 경각심이라도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