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익 탐라문화연구원⋅논설위원

2018년 6월 제주도민 3,805명이 도의회에 '제주도 이어도 문화보전 및 전승 조례안'을 제정해 달라고 청구했다. 그러나 도의원들은 이어도 조례안이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고,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주도민들에게 실익이 없다는 의견을 제시"함에 따라 임시회의에 상정하지 않고 폐기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접한 제주도민들 사이에서 이어도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이어도는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49km에 위치한 암초로, 한중간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에 위치한다. 1901년부터는 서양세계에 '소코트라 락(Socotra rock)'으로 알려졌다. 1951년부터는 '파랑도(波浪島)'라고 부르다가 2001년부터는 국립지리원이 지도에 '이어도'를 암초이름으로 표기했다. 중국은 2006년부터 '소코트라 락'에서 '소(So)'자를 빌려 '쑤엔자오'(蘇暗礁)라고 부른다. 

이어도는 도민들에게는 두 개의 섬으로 인식된다. '전설 속 이어도'와 암초로 존재하는 '지리 속의 이어도'가 그것이다. '전설 속 이어도'는 1923년 강봉옥(康奉玉)이 '이허도'(離虛島)를 제주인의 '이상향'이자 '전설의 섬'으로 소개한 것처럼, 제주인들이 죽어서 가는 '피안(彼岸)의 섬''으로 알려졌다. 이곳은 제주해민(濟州海民)들의 고대 해상 생활세계 내에 위치해 이어도 관련 다양한 전설과 민요, 민담 등 스토리를 제공한 공간이었다. "이어도 스토리들은 중국과 일본 등에는 존재하지 않아 앞으로 이어도 영역권이 한국에 있음을 주장하는 문화적 권원(權原)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어도에 대한 최초 문헌기록은 제주도에 유배 왔던 이용호(李容鎬)의 ??청용만고(聽?漫稿)??(1897)에 등장한다. 여기에 기록된 '이여도(離汝島)'는 제주도민들이 원나라에 말을 바치는 역사(役事)를 위해 바다를 건널 때 풍랑을 만나 살아남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내용을 소개한 민요가사에 나타났다. 이어도가 현재처럼 해수면 아래로 잠기기 전에는 섬이었기 때문에 탐라와 중국을 연결했던 남방항로를 왕래했던 탐라인들은 이어도를 인지했을 것이다. "19세기말 제작된 ??여지전도(輿地全圖)??에 제주도와 중국 영파를 연결하는 해로 상에 존재한 섬이 이어도로 추정된다"는 견해도 있다. "강남(江南)을 가건 해남(海南)을 보라 이어도가 반이엔 해라"라는 민요에도 이어도가 제주도 서남쪽 중국으로 가는 남방항로 중의 어딘가에 위치했던 섬이었음을 보여준다. 

'지리 속 이어도'는 이어도해양종합과학기지가 있는 현실의 이어도 즉 암초를 말한다. 이곳은 "신생대 제4기의 빙하기에 진흙과 모래로 구성된 퇴적층이 형성된 후, 이어도 가까운 곳에 위치하던 화산에서  분출된 화산암편과 응회물질들이 흘러 들어와 퇴적층 전체를 덮으며 만들어졌다. 간빙기에는 해수면이 100m 이상 상승하면서 이어도의 대부분이 물에 잠기고 정상부만 물 밖으로 노출된 섬이었으나, 오랜 기간 태풍이 일으키는 파도에 의해 섬의 정상부가 침식되어 현재처럼 암초("숨은 여")가 되었다." 

현재 중국은 '해양변강공정(海洋邊疆工程)'의 일환으로 '이어도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대한민국의 이어도'를 지켜는 일은 해양강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어도 해상은 우리나라 수출입 선박의 90%가 통과하는 바다라는 점에서 중국에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곳이다. 이어도 해상이 중국 측에 넘어가 중국 해군함정들이 이어도 해역을 봉쇄할 경우 우리나라가 입을 경제적 피해는 막대할 것이다. 이어도를 지켜야 제주인들의 정체성과 이어도 문화를 계승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제주특별자치도는 다양한 이어도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민간차원과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어도 지킴이 활동과 이어도 영유권 교육에 대한 지원이 필요다. 이어도는 본래 제주인의 '바당' 한 가운데에 있던 섬이었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