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용순

원도심이란 글자를 자주 만나면서 이런 획일적이고 평준화된 표현보다 '제주성안'이란 우리들의 글자를 쓰는 건 어떨까. 목관아(牧官衙)에서 온 '모간' '모관' 등의 표현 또한 외람되지만 옛 제주성(濟州城) 밖의 멀리 사는 사람들이 목관아에 간다고 약간 으스대는 듯한 표현으로 저들끼리만 사용하던 은어일 뿐이다. 서울깍정이란 말도 시골사람들이 저들 끼리 서울 사람을 빗대어 사용한 은어일 뿐이다. 

1939년 제주도청에서 출판된 '제주도세요람'의 끝 부분에 요즘처럼 박종실상점을 비롯한 명함광고들이 있는데 주소를 '제주성내(濟州城內)…'라고 표기하고 있다.

1105년 고려 숙종 10년 '탐라가 고려의 한 군(郡)인 탐라군(耽羅郡)으로 개편되면서 구당사(句當使) 윤응균(尹應均)이 내도(來島)해 남녀 간의 나체 물질 조업에 금지령을 내렸으며 남성 나잠인(裸潛人)들을 가리키는 포작(鮑作)은 주로 깊은 바다에서 전복(全鰒)을 따고 여성 나잠인(裸潛人)들을 가리키는 잠녀(潛女)는 미역, 청각 등 해조류를 채취했다'는 기록에서 보듯이 '잠녀(潛女)'라고 쓰고 또 불러왔으며 지금도 경상도지방에 출가(出稼)한 우리잠녀의 후손들은 모임 명칭으로 잠수, 잠녀라는 글자를 사용하고 있으며 요즘 쓰이고 있는 해녀 '海女, 아마(일어발음)'는 일본 글자요 단어로 일제가 글자마저 강요한 결과이며 잠녀(潛女)는 일본이 강제 병합한 시대의 빼앗긴 우리의 단어다.

또한 탐라국을 병합한 고려시대인 1211년 고려 희종 7년에 탐라군(耽羅郡)을 제주군(濟州郡)으로 개편하면서 건널 제(濟), 고을 주(州)를 써서 즉 큰 물 건너에 있는 마을이란 뜻의 '제주(濟州)'로 개칭했다는 기록이 있듯이 '탐라(耽羅)'는 빼앗긴 우리들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단어고 말이며 우리 탐라인들의 글자인 '탐라' '잠녀' '성안' 을 찾고, 쓰고, 알려 주는 일에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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