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무순 제주특별자치도 보건복지여성국장

1629년(인조 7년)부터 제주 여성은 출륙금지(出陸禁止)를 당해 약 250여년 동안 섬에 갇혀 살아야만 했다. 출륙금지가 실행된 동안 공식적으로 제주도 밖으로 나간 여성은 김만덕(1739~1812) 한 사람뿐이었다. 1795년(정조 19년) 전 재산을 내놓아 제주도 백성을 구휼했던 그녀의 소원이 금강산을 구경하는 것이었는데 왕명에 의해 그 바람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김만덕은 1794년~1795년에 흉년으로 제주도민들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을 때 자신의 전 재산으로 쌀을 구입해 도민에게 나눠 줌으로써 기아상태의 도민 1000여명의 생명을 구했다.  이러한 그녀의 선행이 조정에 알려졌고, 정조는 그녀를 궁궐로 불러들여 내의원의 의녀반수(醫女班首)의 직함을 제수하고 그녀의 소원인 금강산 유람을 했다.

김만덕에 관한 공식기록으로는 「승정원일기」 「일성록」 「정조실록」과 채제공의 「김만덕전」 규장각 문신들의 각종 전기 등이 있으며 또한 박제가, 정약용, 이가환 등 당대의 쟁쟁한 실학자들이 그녀의 선행을 기리는 한시를 남기기도 했다.

어린시절 부모를 잃어 고아로 성장하는 등 불우한 환경과 여성을 억압하던 시대의 한계를 극복해 불합리한 규범과 맞서 새로운 것에 과감히 도전하고 개척하여 자신의 이상을 실현한 조선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CEO)이자 주체적인 삶의 개척자, 나눔과 봉사의 표상으로 제주여성을 대표하는 선구자이다.

1977년에 모충사(제주시 사라봉 소재)로 이묘하고 1980년부터 '만덕상' 시상과 '만덕제'를 봉행하면서 도민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2007년에는 묘비가 기념물 제64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2000년대로 들어오면서 그녀의 위대한 나눔정신을 알리고 실천하려는 도민사회의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사단법인 김만덕기념사업회'에서 '천섬 쌓기, 만섬 쌓기' 등을 추진하면서 김만덕은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또한 제주특별자치도에서도 김만덕 정신을 계승하고 시대정신으로 선양하기 위해  '김만덕기념관'을 건립(2015년)했다. 2017년부터는 김만덕 기일인 10월 22일을 포함한 10월 넷째주를 '김만덕 주간'으로 지정해 만덕제 봉행, 만덕상 시상, 나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김만덕상 수상자는 지금까지 45명(봉사부문 38, 경제인부문 7)으로, 올해는 39번째 '김만덕상'을 시상(10.22 예정)하게 된다.

김만덕상 후보자 추천은 지난 5월 1일부터 받고 있으며 마감은 오는 8월 13일이다. 김만덕상은 노블리스오블리제를 실천한 여성을 발굴해 김만덕 정신을 계승하기 위함으로 도내는 물론 국내외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추천해 주기를 바란다. 시상대상은 2명으로 경제적 도움보다는 순수한 이웃사랑을 실천한 '봉사부문'과 경제활동으로 얻은 이윤을 나눔과 베풂을 실천해 이웃사회에 환원한 '경제인부문' 등 각 1명이다.

우리는 기부문화를 자랑하는 미국사회를 부러워한다. 빌 게이츠, 워렌 버핏, 척 피니, 앤드류 카네기 등 많은 부를 축적한 자산가들은 한국의 대기업처럼 부를 대물림하지 않고 노블리스오블리제를 몸소 실천한다. 이러한 기부문화는 거대 자본주의 병폐에도 불구하고 미국사회를 지탱하는 원동력이자 자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220여 년 전 시대를 앞서 노블리스오블리제를 실천한 의인 김만덕이 있다.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늘 검소하게 살면서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던 그녀의 삶은 그 자체로 드라마이며, 제주의 미래정신이자 미래 가치인 것이다. 

사단법인 김만덕기념사업회에서 설립한 베트남 칸호와 제주초등학교, 번푸 만덕중학교 등을 통해 세계로 뿌리를 내려가고 있고, 김만덕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도 제작되어 제주의 문화 콘텐츠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김만덕 정신은 우리의 미래세대에게도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 때 김만덕 후손에게 써준 편액문구 은광연세(恩光衍世)처럼 은혜로운 빛으로 선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배출되어 김만덕 정신이 더욱 계승 발전되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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