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호적을 뒤적이다 보면 이름위에 붉은 줄이 나란히 그어진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범죄를 저질러 형벌을 받는 범죄자, 전과자 표시다.

이들 전과자들 중에는 범죄 아닌 범죄, 전과 아닌 전과자들이 대다수다. 특히 일제시대를 산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이 많았다. 이를테면 김명식, 윤봉길, 이봉창 등등의 항일투사에서부터 일본제국주의 정책에 녹녹하게 굴지 않는 조선인, 이른바 불령선인(不逞鮮人)들인 경우는 예외는 아니었다.

1920년대 동아일보의 창간멤버이자 동아일보 사주와 의형제이기도 했던 김명식 선생. 제주 출신이기도 했던 그는 필설로 일제에 항거하다 반신불수가 되어 유명을 달리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반정부 사범에 불과 했다. 중국 상하이 훙거우(虹口)공원에서 폭탄을 투척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하고 대한남아의 기개를 떨치게 했던 윤봉길 의사. 그 역시 일제의 시각으로는 시쳇말로 ‘테러리스트’였을 따름이다.

이같은 시각은 비단 일제만이 아니었다. 동시대를 살아온 일부 조선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또한 일제와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일제에 빌붙어 호가호위한 친일세력들 또한 다를 바 없었다.

그랬다. 지금에 와서는 외세에 대항한 항일투사로 추앙을 받고 있지만 그 시대 그들의 시각으로는 범죄자 전과자일 따름이었다.

일제의 시각에서 보면 그들은 나라에 대해 불평 불만을 품고 제멋대로 행동한, 그야말로 불령지도(不逞之徒)들이었다. 하지만 역사는 그 시대의 시각으로만 가해와 피해를 재단하지 않는다. 때로는 역사는 범죄와 전과자의 편에 서기도 한다.

시공을 달리하는 사건들이기는 하지만 일제가 패망한 해방공간에도 숱한 범죄 아닌 범죄, 전과자 아닌 전과자들이 양산됐다. 제주의 4·3이 그 대표적 사례다. 시대를 풍미해온 좌우 이데올로기의 논리에 의해 숱한 사람들이 범죄자, 전과자의 굴레에 놓여졌다.

좌와 우를 그렇게 가리지도 않았던 그 시절, 그 시대였건만 결과적으로는 수많은 제주사람들은 불령지도, 불령도인(不逞島人)이 되고 말았다. 단지 ‘한겨레가 하나된 나라, 하나의 정부 속에 살고 싶다’고 외세(미군정)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과연 한 시대의 속죄양들인 그들을 역사는 언제까지 범죄자, 전과자로 두고 볼 것인가. <고홍철·논설위원겸 코리아뉴스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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