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스토리 / 강태환 설치미술 작가

가송 예술상 대상 수상
틈·비움 주제 작품 전시

세상은 채워야 할 것들로 가득하다. 이력서에 넣을 스펙, 통장잔고, 하물며 사무실 인쇄기 A4용지까지….

채워야 할 것이 산더미라 지칠 법도 한데 채우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무엇인가를 집어넣으려고 애쓴다.

꽉 찬 머리와 마음을 비우는 일은 채우는 것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강태환 설치미술 작가(35)는 '조금 더' '빈틈없이'를 외치는 사람 속에서 '때로는 내려놓아도 된다'는 따뜻한 말로 저마다의 가슴에 '비울 줄 아는' 용기를 심어줬다.

제주 토박이인 강 작가는 몇 해 전부터 제주 곶자왈의 지반을 보고 영감을 얻어 '틈'을 주제로 미술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곶자왈의 지반은 모래, 진흙, 자갈 등 차례로 구성된 일반적인 지반과 달리 암석으로 이뤄져 있다. 곶자왈은 암석 사이사이에 뿌리를 내려 그 틈으로 숨을 쉬고 물을 마신다. 강 작가는 곶자왈의 지반을 평면적인 미술작품과 달리 바라보는 각도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설치미술과 접합해 '공간의 틈' 즉 '숨 쉬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을 기획했다.

그는 "설치미술이 아직 관람객들에게 친근한 분야는 아니라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설치미술을 볼 때는 우선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눈으로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관람객의 감정이 작품에 스며들어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귀띔했다.

'비움공간'은 직접 공수한 제주 바닷물 위에 길게 늘어선 수많은 투명 광섬유들을 이용해 공간의 틈을 표현했다. 강 작가는 광섬유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틈을 '바람이 지나는 길'로 표현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계를 나타냈다.

최근 동화약품 부채표 가송재단이 주최한 '가송 예술상'에서 대상을 받은 '비움공간'

최근 동화약품 부채표 가송재단이 주최한 '가송 예술상'에서 대상을 받은 '비움공간'이라는 작품도 '틈' 연구 작업의 일환이다.

강 작가는 내년 상반기에 틈을 주제로 한 개인전을 열기 위한 작업에 분주하다. 그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많은 이에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다"며 "채우는 데에만 급급한 우리에게 조금 모자라도, 비워내도 괜찮다고 얘기하는 미술 작품 작업을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틈'은 다르겠지만 그가 생각하는 틈은 영화에 나오는 대사 한마디면 이해하기에 충분하다. '감추어도 괜찮다, 드러내도 괜찮다, 뒤죽박죽이어도 괜찮다(Life, Some Disassemb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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