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훈 변호사

모르긴 해도 평생 법원 구경 한 번 못해보고 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변호사란 사람을 처음 보았다며 짐짓 신기한 눈초리로 훑어보던 사람도 있었다. 그만큼 장삼이사에게 송사는 일생일대의 중대사다.

한 번 송사에 휘말리면 당사자가 받는 압박감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불면으로 지새는 나날이 늘어가고 재판 날이 다가오면서 신경과민의 정도는 통제불능 지경으로 치닫는다. 변호사에게 소송대리를 맡기고도 안심이 안 돼 재판 날마다 개근을 해서는 방청석에 앉아 눈을 부릅뜨고 관련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안광 레이저로 스캔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내 제지를 당할 것을 알면서도 변론 도중에 불쑥 끼어들어 기어이 핀잔을 듣고야 마는 것도 그 사람의 성정이 유별나서가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숱한 시간을 노심초사한 끝에 받아든 2심 판결이 기대와 달리 나오면 그의 분노와 좌절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비난의 화살은 소송 관계자 모두를 향해 무차별로 날아가 꽂힌다. 이제 바라볼 곳은 오직 하나. 정의를 되찾아줄 최후의 보루. 대법원이 남아 있다. 아직 희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변호사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최신 통계를 나열하며 눈치를 본다. "대법원에 올라간 사건 중 8할은 심리도 받아보지 못하고 끝난다고. 그 단계를 통과하여 판결이유가 붙는 것도 대부분 기각되고 운 좋은 것 몇 개만 파기환송 열차를 탄다고. 그래도 상고하겠느냐고".

그러나 통계는 숫자에 불과하다. 기어이 상고장은 제출된다. 그리고 두어 달 만에 엽서 배달되듯 불쑥 날아오는 두 장짜리 판결서. 심리할 나위가 없으니 이유도 안 말해준단다. "용용 죽겠지". 

"거봐요. 내 말이 맞았잖아요. 차라리 상고법원 만들겠다고 부산을 떨 때 앞장서서 찬성해둘 걸 그랬어요".

"희망 고문은 끝났다. 이제 좀 편해지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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