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제주의 4월은 참으로 잔인하게 시작되었다. 3월말부터 펼쳐진 4·3문화예술제 행사들이 당시의 아픔과 참혹함을 다채롭게 형상화하고 있는 가운데, 예년보다 일찍 개화한 왕벚꽃의 화사함이 4·3의 비극을 더욱 처연하게 연출해주었기 때문이다.

4·3은 무엇이던가? 그것은 수만명의 무고한 양민이 목숨을 잃고 엄청난 재산상의 피해를 입은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공간적으로 보면 4·3은 제주도의 전통적인 취락패턴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으며, 중산간 지역 주민들의 강제적인 소개(疏開)는 수백년 동안 자자손손 한 마을에서 살아오면서 자신과 땅을 동일시해온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존재기반을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양지바른 곳에 모신 조상들의 선산과 피땀 흘려 가꿔온 옥토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난 이들에게 남은 여생은 축복이 아니라 모진 형벌에 다름 아니었다.

이런 의미에서 4·3 54주년 행사의 하나로 마련한 ‘4·3역사순례-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는 4·3의 실체를 보다 명료하게 이해하고 그것의 역사적 의미를 보다 풍요롭게 해석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이번 역사순례는 해안동 리생이마을 - 봉성리 자리왓 - 명월리 빌레못 - 동광리 삼밭구석 - 유수암리 거문덕이 등 주로 서남부 일대 마을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해맑은 일요일이어서인지 엄마 아빠와 동행한 유치원, 초등학생들을 비롯하여 180여명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최근 세워진 잃어버린 마을 표석과 옛마을터를 둘러보았다.

돌이켜보면 주최측의 세심한 준비와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들로 4·3의 실체를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었던 뿌듯함과 함께 몇가지 아쉬움도 남는 하루였다.

4·3당시 무차별적인 파괴와 방화가 이루어졌던 마을, 바로 그 현장을 찾아갔는데도 불구하고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은 경지를 둘러싼 돌담과 올래자리, 그리고 전에 마을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대나무 숲이 전부이다.

이들 경관은 잘 정돈된 평화로운 농촌의 일부를 보여줄 뿐, 이들을 통해 50년전 처참하게 폐허가된 마을의 모습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잃어버린 마을의 생생한 현장감을 되살려 후세대를 위한 역사교육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폐허 당시의 마을 모습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선사유적지와 제주목관아지를 복원하여 고대와 중세시대 제주의 역사를 가시적으로 되살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산간 잃어버린 마을 중 몇 곳을 선정하여 참혹한 파괴현장을 그대로 복원함으로써 제주의 근현대사를 상징적으로 되살리는 것은 지방화 시대 자치단체가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어린이들을 위한 차별화된 프로그램이 준비되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번 순례에는 30-40명의 많은 어린이들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아직 4·3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이다.

현재 우리 교육과정에는 4·3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거나 매우 편향된 시각에서만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순례는 이들에게 4·3의 실체와 역사적 의미를 풍요롭고 균형있게 교육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흥미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준비되지 못하였다. 한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일, 보다 내실있는 54주년 4·3역사순례를 기대해본다. <손명철·제주대 교수·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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