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남 정치부 차장

2006년 7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기초자치단체였던 4개 시'군이 폐지되고 법인격이 없는 '행정시'가 등장했다. 행정시는 당초 특별자치도 구상에 없었던 행정시스템이다. 기초단체'의회 폐지로 인한 주민들의 상실감과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한 '정치적 선택'으로 옛 제주시와 옛 북제주군을 통합한 제주시와 옛 서귀포시와 옛 남제주군을 합친 서귀포시가 출범하게 된 것이다. 행정시의 수장은 '행정시장'이다. 다만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지 않고 제주도지사가 러닝메이트 또는 공모 등을 통해 임명한다.

최근 정치권에서 '패싱'(passing)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오르내리고 있다. 2017년 제19대 대선을 앞두고 열린 한 방송토론회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에 대해 물으면서 대다수 국민들이 이 단어를 알게 됐다. 이후 국내외적으로 주요 정치적 이슈에서 배제되거나 정책결정 과정에서 소외됐을 때를 빗대어 '패싱'이라는 용어가 통용되고 있다.

사실 '코리아 패싱'은 '저팬 패싱(Japan passing)'의 아류라는 것이 정치권의 통설이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라고 자랑하던 일본은 1990년대 중반 들어 심각한 경제위기와 국제적 위상 추락 때문에 사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침체돼 이었다. 그런데 1998년에 당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일본을 건너뛰자 '저팬 패싱'이라는 자조적 한탄이 나오게 된 것이다.

제주도가 27일 제주시장과 서귀포시장 임용 후보자 선발결과를 발표했다. 과거부터 후보자들의 역량이나 인품 등을 대한 세간의 평가를 떠나 제주시민과 서귀포시민의 대표성을 갖는 행정시장 선발과정에서 시민들의 의사는 반영되지 못한 채 '패싱'됐다는 말이 나온다. 민선 4기부터 시작된 행정시장은 민선 5기까지는 도지사의 측근들이 독차지했다. 원희룡 지사가 등장한 민선 6기부터는 도지사의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패싱'이라는 말에는 '죽음'이라는 뜻도 있다. 지금과 같은 행정시장 임명은 '시민 주권'의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