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석 이사 논설위원·서귀포지사장

'저비용 고효율' 특별자치도 훼손

기억이 다소 흐릿할 수 있지만 닷새전인 지난달 27일은 특별자치도를 위해 4개 시·군 기초자단체를 주민투표로 폐지한지 13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2005년 7월27일 제주사회는 '제주도 단일광역자치-2개 통합행정시'의 혁신안과 '도-4개 시·군 현행 유지'의 점진안을 놓고 산북과 산남으로 양분된 가운데 투표율이 37%로 저조했지만 혁신안이 57%의 지지를 얻어 특별자치도 자치행정모형으로 선택됐다.

특별자치도를 출범시킨 민선4기 도정은 단일광역자치의 행정구조개편을 추진하면서 행정조직과 공무원을 줄인 절감액을 주민들의 복지재원으로 투자하겠다는 '저비용 고효율'을 약속했고, 2008년까지 공무원 191명을 감축했다.  

특별자치도 출범으로 자치조직권이 행정자치부장관에서 제주도지사로 이관, 정부의 승인을 얻지 않고도 행정조직과 공무원을 마음껏 늘릴수 있지만 "적은 비용으로 주민복지를 높이겠다"는 약속에 따라 행정조직 및 인력 확대를 자제한 것이다. 

하지만 민선7기 원희룡 제주도정이 사상 최대의 행정조직과 공무원 인력을 증원한 조직 확대 및 정원조례 개정안을 도의회에 제출, 적은 인력과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저비용 고효율'의 특별자치도 출범 기본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현행 도 본청 13국·51과를 17국·60과로 확대하고, 공무원 숫자를 전체적으로 241명 늘린 결과 인건비·부서운영비 등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할 경직성 경비가 높아지면서 주민복지에 쓰일 재원을 공직사회가 잠식하는 '고비용 저효율'의 부작용을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공무원 숫자와 조직 확대의 부작용은 2017년 행정자치분야의 일반회계 세출예산에서 확인된다. 전체 1조5000억여원 가운데 인건비 3600억, 부서운영비 950억원 등 경직성 경비가 4550억원으로 33.3%를 차지한 반면 주민참여예산은 170억원에 불과했다. 게다가 민선7기에서 늘리려는 공무원 241명은 특별자치도 출범 10년간 증원한 235명에 비해서도 많아 주민복지 재원을 잠식하는 공직사회의 경직성 경비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민선7기 조직 확대는 3급 부이사관 4자리와 4급 서기관 10자리, 5급 사무관 26자리 등 높은 급여를 받는 고위직급만 40자리 늘린 결과 주민들이 부담해야 할 인건비가 더 늘어나는 반면 공무원들은 올 하반기 인사에서 대규모 승진 잔치를 예고하고 있다. 특별도 출범으로 공무원만 좋아질 것이라는 도민들의 우려가 현실화되는 셈이다. 

고위직 승진 자리를 늘린 것과 관련해 도청 안팎에서는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관권선거 의혹이 짙었던 만큼 원 지사를 위해 나름대로 기여한 공직사회를 챙기려는 '보은성 조직개편'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일단 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가 조직 확대 및 정원조례 개정안에 제동을 걸었지만 '짬짜미'식 타협의 걱정도 적지 않다. 

도의회도 원 도정의 배려(?)로 사무처 조직·인력이 1담당관·17명 증원되고, 인사의 자율성을 확보한 만큼 '고비용 저효율'의 행정조직 개편안을 생색내기로 손질해 통과시킬 것이란 우려가 도의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의회 수수방관하면 도민 피해

도와 도의회는 13년전 시·군 폐지에 찬성하거나 반대한 도민들 모두가 저비용 고효율의 행정조직을 운영하겠다는 공직사회의 약속 이행 여부를 지금도 지켜보고 있음을 두려워해야 한다. 

특히 하반기 인사에 차질이 빚어지더라도 특별자치도 출범 취지인 '저비용 고효율' 행정조직이 훼손되지 않도록 행정기구 설치 및 정원조례 승인권을 쥔 도의회의 책임성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노파심에서 제언하지만 민선7기의 행정조직과 정원을 마음껏 늘리는 '조직 비대증'을 도의회가 수수방관하면 도민에게 천명한 특별자치도의 저비용 고효율 약속은 헛구호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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