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 사회부 차장

때가 지난 뒤에 어리석게 애를 쓰는 경우를 지칭하는 말 중에 '사후약방문'이 있다. 조선 인조 때 학자 홍만종이 지은 문학평론집 순오지에 나오는 이 말은 사람이 죽은 후에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소용이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비슷한 의미의 격언이나 속담은 더 있다. 중국 전한시대 유향이 편찬한 전국책에 나오는 고사 중 '망양보뢰'는 양을 잃고 나서야 우리를 고친다는 뜻이다. 사후청심환(죽은 뒤에 청심환을 찾는다), 실마치구(말 잃고 마구간 고친다), 실우치구(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등도 같은 의미로 쓰인다. 비슷한 우리 속담에 장이 끝난 뒤에 가봤자 소용없다는 '늦은 밥 먹고 파장 간다'거나 벌겋게 달아 있는 솥에 몇 방울의 물을 떨어뜨려도 솥이 식을 리 없다는 '단솥에 물 붓기'가 맥락을 같이 한다.

단단히 대비를 하라는 교훈적인 의미가 강하지만 현실에서는 안타깝고 아쉬운 상황들과 연결된다. 어린이집 안전사고와 관련한 정부 대책에도 이런 관용어가 따라 붙었다.

최근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폭염 속 통학차량에 방치된 4세 여자 아이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정부는 올 연말까지 전국 어린이집 통학차량 2만8000여대에 '잠자는 아이 확인 장치' 시스템을 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재발방지 방안을 내놨다. 여기에 어린이집 등·하원을 자동으로 부모에게 알려주는 서비스 도입 외에 안전사고와 아동학대 발생 때 원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까지 '어린이집 통학차량 안전사고 및 아동학대 근절 대책'에 포함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일사천리로 나온 후속 대책이다. 보건복지부에 이어 교육부도 1일 유치원·초등학교·특수학교 통학차량에 대해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내용의 대책을 내놨다.

잠깐 부주의로 어린 생명이 목숨을 잃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잊을 만하면 되풀이된다. 후속조치란 말 뜻 그대로 사고가 나서 어린 목숨을 잃거나 다친 뒤에야 나온다. 어린이는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하고 가장 안전해야 한다. 대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누구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감수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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