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함께 하는 청소년 소설 MT 문학백일장에서는 제주제일고등학교 2년 김병진군의 산문 ‘따뜻한 침묵’이 최우수작에 뽑혀 한국소설가협회장상과 부상을 받았다.

 ‘우리집’과 ‘오름’을 주제로 솜씨를 겨룬 이날 백일장에서 우수작은 변은영(사대부고 1년)의 시 ‘오름을 오르는 길’, 오수정(서귀포 여고 2년)의 산문 ‘오름에 오르는 사람들’, 김주아(제주서중 3년)의 산문 ‘나의 팔다리’가 선정돼 제민일보 사장상과 부상이 주어졌다.

 또 오소아(서귀포여고 2년)의 ‘행복이 돼라’, 이수정(사대부고 2년)의 ‘손톱’, 문지현(서귀포여고 2년)의 ‘저녁식사’, 고영섭(제주일고 2년)의 ‘아버지의 눈물’, 김상규(사대부고 3년)의 ‘오름과 함께 산다’가 가작(소설가협회장과 부상)을 차지했다.

 심사 총평을 한 오성찬씨는 “이번 백일장에선 제주 자연의 아름다움, 가족과 함께 오름을 오르면서 느꼈던 감흥, 가족문제, 자취생이 겪은 어려움 등을 담담히 풀어낸 작품들이 많았다”면서 “수상 작품뿐만 아니라 백일장 작품들이 전반으로 고른 수준을 보여 제주문단의 밝은 미래를 확인할 수 있어 기쁘다”고 밝혔다.

◈"따뜻한 침묵"
 “퍽!”

 아버지는 쓰러졌고, 어머니는 눈이 바로 커지셨다. 나는 그 잠깐의 시간이 몇 년 인 듯 싶었다. 아버지는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나오셨고 해병대 출신으로 매우 강한 분이셨다. 아버지는 술을 매우 좋아하셨는데 술을 드시고 나시면 나를 앞에 세워두고는 항상 같은 말을 반복하셨다. 그리고 따라하라고 하셨다.

 “나는 강하고 멋진 사람이다.”

 처음에는 이 말을 왜 나한테 해 주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조금 더 내가 자라고 나서는 난 아버지가 나를 불러 세워도 아버지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술 그만 드시고 주무시라고만 말씀 드릴뿐’

 아버지는 술을 드시고 나면 어머니께 그동안 쌓아온 감정을 다 말해버렸다. 그것이 도가 심해지면 어머니께 손을 올리시기도 하셨다. 어릴 때는 울기만 하였고 조금 더 커서는 동생들을 보호한답시고 부모님께 뭐라고 해 버렸다. 어떤 때는 아주 무시해 버리기도 했다. 술 드신 아버지는 정말 짜증이 났고 고등학생이 되어선 두 분이 언성을 높이시더라도 난 그냥 방안에 문을 잠그고 누워버렸다. 어머니는 나를 부르시기도 했었지만 난 모든 걸 무시했다.

 다음 날 일어나면 어머니는 나에게 너무 한다고 뭐라고 하셨고, 그것 역시 무시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너무 싫었고 될 수 있음 집 밖에 있으려고 했다.

 그렇게 또 어느 날 밤이었다. 아버지는 또 술을 드시고 오셨고 또 어머니와 싸우셨다. 난 너무 화가 나 두 분에게 큰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고 그대로 집밖으로 나가셨다. 조금 있다 어머니라 나를 불러내셨다.

 “병진아. 네가 큰 잘못을 하고 있는 거란다. 아무리 화가 나도, 네가 참아야지, 아빠도 얼마나 화가 나셨음 저렇게 하겠니. 은행에서 스트레스 받으시고, 집에 오면 엄마가 잘못하다 보니까 이러는 건데…. 엄마도 잘못했지만, 병진아 절대로 두 번 다시 그러면 안 된단다. 아버지 돌아오시면 잘못했다고 하거라.”

 묵묵히 어머니 말씀을 듣기만 하였다. 몇 분 후 아버지께서 들어오셨다. 그러나 나는 “잘못했습니다”란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대로 방안에 들어가셔서 주무셨고 나 역시 그냥 갈 수밖에 없었다.

 어느 새 아버지와 나 사인엔 왠지 모를 벽이 들어선 기분이었다. 그 벽을 무너뜨리고 싶었으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버지와 나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내가 아버지께 직접적으로 드리는 말은 “다녀오세요” “다녀오셨어요”“용돈 좀 주세요” 이 세 마디 정도였고 아버지 역시 나에게 많은 말을 하지 않으셨다. 시간이 가고 2001년이라는 한 해가 몇 시간 안 남을 때였다. 난 집 밖에서 친구들과 새해를 맞이하였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조금 취하신 채로 계셨다. 다음 날 친구들과 새해맞이 해돋이 구경을 갈 터라 일찍 자리에 누웠다. 부엌에서는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났고 아버지의 입에선 거친 말이 나오셨다. 그리고 조금 있다 어머니께 뭐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새해 첫 날의 좋은 기분이 너무나 나빠졌고 난 이불을 차며 안방으로 갔다. 그 날도 아버지는 어머니께 뭐라 하셨다.

 너무나 짜증이 났다. 아버지 손이 어머니께 올라가는 순간 난 다시는 못 올 다리를 건넜다. 그대로 나는 아버지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아버지는 쓰러졌고 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했다. 아버지는 바로 일어나 나를 향해 오셨고 그 다음 일은 나조차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난 새해 첫 밤을 성당에서 맞이했다. 아버지를 피해 난 늦은 시간에 집을 나왔다. 나조차 내가 한 일이 믿기지 않아 울기만 했고 자전거 페달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성당에 들어가 가운데 달린 십자가를 보며 마냥 울기만 했다. 결코 나쁜 분이 아닌데 아버지는 …. 단지 내 개인적 기분 하나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생각하니 눈물조차 나에게는 과분했다. 나의 18년의 전부를 이끌어주신 아버지를 내 손으로, 울다 지쳐 난 그대로 잠들었다.

 새해 첫 아침이 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은 매우 조용했다. 난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잠들었다고 생각한 순간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아들로서 정말 못할 짓을 했다고 꾸중부터 하셨고 잘못했다고 말하라고 하셨으나 맘대로 나오지 않았다. 잘못한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입이 자연스럽게 열리지 못했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잘못했습니다”라는 말만을 가슴에 묻은 채.

 오랜만에 아버지께서 목욕탕 가자는 말씀을 꺼내셨다. 중학교 입학 전까지는 매주 일요일마다 같이 갔었지만 중학생이 된 이후로는 명절 때만 갔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한번도 가 본적이 없었다.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은.

 서로의 등을 멀어주면서도 아버지와 나는 묵묵히 할 일만 했다. 나는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싶었으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차마 아버지 얼굴조차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아버지께서 입을 여셨다.

 “어릴 때 아빠가 한 말 기억나니?”

 물론 나는 기억한다고 대답했고 또 내가 그 말을 했다.

 “그래 너는 강하고 멋진 사람이란다. 그 날 일은 아버지가 미한하단다. 아버지가 화를 참지 못해서 엄마하고 너한테 못할 짓을 했구나. 정말 미안하구나.”

 그곳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아버지께 눈물을 보일 수 없었고 눈물을 보일 자격도 없었다. 나는 작은 소리로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와 나는 계속 침묵을 지켰다. 그 날 이후로 아버지와 난 거의 말을 안 한다. 그렇지만 전과는 다른 바람이 분다. 그저 아버지가 밉게만 보였지만 이제는 아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전과는 다른 침묵이다. 따뜻함이 도는 침묵, 바로 아버지와 나 사이의 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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