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아니라 생각한 미세한 차이가 결과를 완전히 바꾸는 일이 간혹 있다. '나비효과'라 부르는 현상이다. 이 표현은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노턴 로렌즈가 1972년에 미국 과학부흥협회에서 실시한 강연의 제목인 '예측가능성-브라질에서의 한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는가(Does the Flap of a Butterfly's Wings in Brazil Set Off a Tornado in Texas?)'에서 유래한다. 현대과학으로 왜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는가가 늘 궁금했던 과학자가 아주 작은 수치를 잘못 입력한 것으로 전혀 다른 기상관측 결과를 얻은 뒤 제시했다. 처음에는 '갈매기의 날갯짓 한 번으로도 날씨 변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갈매기 효과(1963년)였었다. 9년의 연구와 고민 끝에 '나비효과'라는 시적인 표현으로 바뀌었다.

예측범위 안과 밖

혼돈 이론에서는 그 해석이 조금 다르다. 초기 조건의 민감한 의존성에 따른 미래결과의 예측불가능성을 의미한다. 때문에 이는 시공간을 가로질러 어떤 하나의 원인이 다른 결과를 초래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자꾸 울기만 하는 딸 평강공주에게 "이렇게 자꾸 울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 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아버지 임금은 자신의 말이 사실이 될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에 더해 평강공주의 내조로 온달이 나라를 구하는 훌륭한 장수가 될 거란 것 역시 예측 범위 안에는 없었다.

제주도는 지난해 8월23일 제주형 대중교통우선차로제를 도입했다. 제주시 광양사거리~아라초등학교 사거리(2.7㎞), 제주공항~해태동산(0.8㎞) 구간에서. 24시간 365일 중앙우선차로제를, 무수천~국립박물관(11.8㎞) 구간에서 평일 출퇴근 시간인 오전 7~9시, 오후 4시30분~7시30분 사이 가로변 차선제를 적용하고 있다.

시행 1년째를 맞아 내놓은 '대중교통 중앙우선차로 모니터링 요역'내용을 보면 일단 긍정적이다. 지난해 8월부터 지난 2월까지 중앙로 2.7㎞ 구간과 공항로 0.8㎞ 구간을 살핀 내용을 보면 중앙로는 개통 전 평균 13.2㎞던 대중교통 속도가 개통후 18.9㎞로 5.6㎞의 개선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대중교통 통행시간 역시 개통전 평균 14분48초에서 개통후 9분34초로 5분14초나 빨라졌다.

일반차량 속도는 개통 전 18.5㎞에서 개통 후 13.1㎞로 5.4㎞ 감소했으며 통행시간도 10분33초에서 13분52초로 3분19초가 증가하면서 지체 양상을 보였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전용차로가 생겼는데 이동속도나 통행시간이 느려지면 '하나마나'한 제도에 불과하다. 그보다 궁금한 것은 당초 기대했던 효과 성과다. 꼼꼼히 살펴보면 통행시간에 대한 개선비율은 42.7%, 통행시간은 35.3%다. '과태료 부과'라는 카드를 적용한 경우라면 보다 나은 결과를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답을 속단하기 어렵다.

우연과 경우의 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속을 태워야 하는 상황은 여전하다. 동서 방면 교통 지체 현상은 아직 여전하고, 일반차량의 통행시간이나 이동속도는 느려졌다. 이정도면 '급행권'에 대한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단계적으로 일반차량의 통행속도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것 역시 답을 찾기 쉽지 않다. 차량 보유대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관광극성수기에는 제주도민 전체 숫자 보다 많은 관광객이 제주를 찾아 90%가 넘는 렌터카 가동률을 기록하는 상황까지 수용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또 하나 우려스러운 것은 기준이다. 렌터카까지 도내에 있는 차라는 차가 죄다 쏟아져 나왔을 8월에서 폭설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2월까지 변화를 나아졌다고 봐야하는 지는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제주 도로 환경을 감안하면 몇 차선 더 늘어나지 않는다면 도심 곳곳에서 상습적으로 반복되는 병목 정체를 피하기 어렵다. 대중교통 이용으로 석유연료 사용을 줄이고, 차량 정체로 인한 불편도 덜고, 더 나아가 기후변화 등에 있어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린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적어도 '미묘한 차이'로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경우의 수에 대한 판단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평강공주가 온달이란 이름을 기억하고 ,그의 숨은 재능을 알아 채 뒷바라지를 했던 모든 것들이 다 우연, 경우의 수였다. "나 차 좀 세워두고 나올게"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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