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남 정치부 차장

세종대왕은 '공론군주'로 불린다. 세종의 공론화 노력은  '세종실록'에 더불어 의논한다(與議·여의)'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데서 알 수 있다.

세종대왕은 즉위 초 세금제도 개혁을 놓고 신하들의 반발에 직면했다. 토지와 관련된 전세를 개혁하기 위해 새로운 세금제도를 도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토지의 비옥도와 지역별 일기에 따라 국가에서 정한 일정액을 내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세종은 이러한 세금제도 개편을 단기간에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시험에 공법의 개선책에 대해 논하라고 출제해 의견을 듣기도 했다. 17만명의 백성들을 대상으로 전국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세종은 25년에 걸쳐 공법의 정당성과 올바른 제도 정립을 위해 지속적으로 의견을 수렴했다. 이렇게 완성된 공법체계는 조선의 기본 조세제도로써 조선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그런데 세종은 필요할 때는 여론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단호한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훈민정음 창제와 4군6진 개척 때는 신하들의 반대를 단호히 물리치고 자신의 뜻을 끝내 관철시켰다. 그 대신 신하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았다. '책임 정치'를 실천한 리더. 조선 최고의 성군 세종을 대표하는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최근 공론화가 대세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나 하나같이 공론화를 최선의 정책 결정 방법으로 여기고 있다.

제주도 역시 다르지 않다. 지난 6월 '제주도 숙의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주민참여 기본조례'가 제정됐다. 첫 외국인 투자개방형 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을 제1호 안건으로 채택했다. 제2공항과 오라관광단지 개발사업에 대해 공론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다. 공론화는 여론조사와 달리 참여 시민들에게 해당 사안을 심화 학습시킨 뒤 토론을 거쳐 의견을 수렴하는 숙의민주주의의 요체인 만큼 민의 존중 차원에서 반길 만한 일이다. 하지만 정작 그다지 흔쾌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원희룡 지사가 국제녹지병원 개원 허가를 시민에서 떠넘기거나 책임회피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민선 6기 도지사로 취임한 원 지사는 외국인투자개방형병원(영리병원)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공론을 중시하면서도 책임정치를 회피하지 않았던 세종대왕이 왜 조선 최고의 군주로 꼽히고 있는 지 원 지사는 생각해봐야 한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