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주 걸스로봇 대표·논설위원

서울 살림을 반쯤 줄여 놓고, 다시 제주로 내려왔다. 지난주 작은놈이 일학년이 됐기 때문이다. 생겨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수차례 에미의 인생을 바꿔왔던 놈이었다. 처음부터 세상의 모든 환영을 받았던 제 형과는 달리, 녀석은 의문투성이였다. 서른 셋, 기적처럼 맞게 된 커리어 도약의 순간, 평생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눈 앞에 둔 시점에, 아이는 갑자기 내게 왔다. 드라마 <미스티> 속 김남주처럼 흔들렸다. 속수무책으로 운명에 휘말리는 기분이었다. 아주 괴팍하고 짓궂은 신이 있어 인생을 희롱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의문과 판단을 멈추고 아이를 받아들였다. 작은놈은 내게 기쁨과 슬픔은 짝패이며, 믿음과 의심도 짝패이고, 희망과 절망마저 짝패임을 온 존재로 알려주었다.

그럼에도 가끔은 이 녀석이 없는 평행우주 속의 나를 상상하곤 한다. 큰아이 하나만 있는, 아니면 누구든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 없는, 오직 어른들의 일만 존재하는 그런 우주 말이다. 거기서도 내가 여전히 나일지, 이처럼 다면의 인간으로 생장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두 아이의 에미로 살다 보면, 다른 우주가 품을 법한 관계의 단순성이나 오롯이 나 하나로만 존재하는 상태가 몹시 부러울 때가 있다. 저쪽 우주가 여기보다 단순하리라는 상상마저 경험하지 않은 자가 멋대로 지껄이는 피상적 폭력일 테지만.

상담 세션도 거의 마무리됐다. 선생님도 당신 아이 문제로 고민하다 정신분석 상담을 공부하게 됐다고 했다. "진주씨는 철없는 소녀의 모습으로 들어와요. 발랄하고 에너지 넘치고 자기애가 큰 여학생이죠. 그러다 돌아갈 땐 눈가에 잔주름을 지으며 조용히 웃는 철학자의 모습이 돼요. 세상 모든 걸 다 아는 달관한 표정이지요. 그 표정이 대단히 신뢰감을 줘요." 나는 쿡 하고 웃었다. "제가 '다중이'로군요." 선생님은 정색했다. "아니, 다중이는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양면성이 있다는 말이에요." "네,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제 안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소녀가 있어요. 시험도 더 봐야 하고 유학도 가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죠. 세상에 증명할 것이 아직 많이 남은."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소녀는 보내셔도 될 것 같은데요? 저로서는 후자 쪽이 훨씬 성숙해 보이고 마음에 들거든요." 나는 굳이 부인했다. "아니요, 아직. 그 아이의 미련이 풀리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아요. 잘 보내주기 위해서는 잘 풀어야 돼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게 며칠 전이었다. 아들을 둘이나 낳기 전, 오직 자기 뿐인 우주에서 성장이 멈춘 것처럼 보였던 여자아이는, 이번에도 또 자기답지 않은 선택을 했다. 베틀에 걸린 삼베를 베어내듯 팽팽했던 모든 걸 끊어내고 제주에 내려왔던 7년 전처럼. 중학교 3학년과 초등학교 1학년, 각각 중요한 전기를 맞는 아이들 곁에 일년이라도 더 머물러 주기로 한 것.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것은 패배일까.

나는 다시 일학년이 되었다. 어쩌면 내 속의 여학생이란 오래 품어 사실 같아진 환상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소녀는 이미 다 자라 떠날 준비를 마친지 오래인데, 내 부모의 가면을 겹쳐 쓴 내가 차마 못 놓아준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소녀의 손을 들어주는 일이 이렇게 늦춰질 수가 있나. 번번이 미뤄질 수가 있나. 그러므로 페미니즘 없는 문학, 예술, 과학이란 다 거짓말이다. 여자라는 존재의 복잡하고 다층적이며 모순적이고 분열적인 측면을, 이전의 언어로는 다 설명할 수가 없다.

이쪽 우주의 내게 아이들이란 디폴트다. 녀석들이 없는 나는 이미 내가 아니다. 녀석들 덕분에 제주과학공간을 현실화하는 데도 탄력이 붙었다. 천문대와 망원경이 있고, 과학책과 실험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랑방 같은 곳. 이름은 [별곶]이라고 붙여보았다. 별처럼 소중한 사람들과 존재의 고민을 나누고, 별과 숲과 바다를 함께 볼 테다. 다음엔 그 이야기를 한 번 해보려 한다. 과학을 한가운데 두고, 제주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대안적인 공동체와 교육 실험 말이다. 그 우주에서 나는, 우리는, 아마 한 뼘쯤 더 자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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