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논설위원

# 무서운 재앙 대응책은 안일

제주가 타들어가고 있다. 가을로 접어든다는 입추가 지났지만 30도를 웃도는 가마솥 더위의 기세는 좀체 꺾일 줄 모른다. 지난달 11일 제주 북부와 동부지역에 올해 첫 발효된 폭염특보는 지난 13일 현재까지 34일째 지속되고 있다. 2008년 우리나라에 폭염특보 제도가 도입된 이후 도내 최장기간이다. 열대야 현상도 극심해지면서 잠 못드는 밤도 이어지고 있다. 섬이라는 특성상 내륙보다 천천히 데워지고 천천히 식는 바다의 영향 탓이다. 제주시와 고산지역은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12일까지 연속 25일째 열대야가 관측됐다.

장기간 계속되는 폭염으로 피해도 이만저만 아니다. 도내 온열질환자는 지난 6일 현재 57명에 이른다. 축산농가에서는 돼지 681마리, 닭 500마리 등 1183마리가 폐사했는가 하면 어류 양식장에서도 가두리 양식을 하던 넙치 27만5000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다. 특히 고온에 취약한 양계농가에서는 계란 생산량이 20%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 밭작물 농가들이 가뭄으로 물 부족에 시달리면서 월동채소의 파종이 늦어지는가 하면 기껏 파종한 구좌지역의 당근은 싹을 틔우지 못하고 있다. 과수농가에서는 한창 여물어야 할 과실들이 갈라지는 열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그렇게 기다리던 '효자 태풍'도 제주를 비껴가고 폭염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어서 피해는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8월말까지 폭염이 막강한 기세를 떨칠 것이라니 '재난급' 폭염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사실 다른 어떤 재난에 못지않은 것이 폭염이다. 지난 사례들을 보면 태풍이나 홍수보다 폭염이 주는 피해가 결코 덜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인명피해만 보더라도 2010년 러시아에서는 130년만의 최악 폭염으로 1만5000명이 숨졌다. 또 2003년 서유럽을 덮친 기록적인 폭염으로 발생한 사망자는 3만5000여명에 달한다. 프랑스에서만 1만4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1994년 온열질환으로 숨진 사람이 3000명을 넘는다. 

폭염이 무서운 재앙임에도 지금까지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대응은 안일하기만 했다. 폭염 대응 매뉴얼은커녕 재난에 포함조차 되지 않다보니 피해가 커도 제대로 지원할 수도 없다. 제주도만 하더라도 현행 재난안전법에는 '자연재난'을 태풍, 홍수, 호우, 강풍, 풍랑, 해일, 대설, 낙뢰, 가뭄, 지진, 황사, 화산활동, 소행성·유성체 등의 추락·충돌 등으로 폭넓게 규정하고 있지만 폭염은 빠져 있다. 때문에 폭염으로 아무리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가축·어류 집단폐사의 피해가 발생해도 재난관리기금 등을 이용한 보상·구호 등 정책적 지원이 불가능하다.

이런 가운데 제주도의회가 폭염을 자연재난에 포함하는 조례 개정안을 발의한 것은 다행스럽다. 강성민 도의원(더불어민주당)이 '제주특별자치도 재난 및 안전관리 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이다. 마침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도 폭염을 재난에 포함하는 입법 추진이 구체화되고 있다. 현재 폭염을 재난에 포함하는 재난안전법 개정안이 국회 행안위에 계류된 상태다. 폭염이 자연재난에 포함되면 폭염에 따른 사망·부상 피해에 재난지원금을 받는 것은 물론 가축·어류 집단 폐사에 대해서도 일정 비율의 재난복구 비용이 지원될 것으로 보인다.

# 상시적 재난으로 대비해야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따라 폭염은 이제 변수가 아닌 매년 대비해야 할 상수다. 태풍이나 홍수처럼 여름철이면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재난으로 여기고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제주도 역시 지금처럼 폭염특보 문자 발송, 무더위 쉼터 운영, 재난 도우미 활동 등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대책으로는 부족하다. 폭염 재난 법제화와 함께 도민 건강과 농·축·수산, 에너지, 산업 등 모든 피해 유형을 포괄하면서 지역특성에 맞는 폭염위기관리 매뉴얼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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