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원학 제주생태교육연구소장·논설위원

비자림 길은 한라산에서 출발하여 교래리를 지나 평대리 해안까지 이어지는 길을 말하며 제주의 전형적인 자연환경을 두루 갖춘 곳이다. 이 길은 사려니 숲길로 시작되는데 한라산 자연림을 호위하듯 줄지어 선 삼나무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이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경이로운 경관미를 선물해 주고 있으며 특히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이나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특별한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물론 제주사람들 역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의 애정이 서려있는 곳이다. 사려니 숲길이 끝나는 곳에서는 곶자왈 숲이 나타난다. 화산이 분출하여 만든 용암대지 위에 만들어진 곶자왈 숲이 바다를 연모하며 달리는 풍광은 제주의 탄생의 비밀을 품고 있는 속살이며 거친 황무지를 일궈 온 선조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길은 중산간의 마을을 지나며 산장구마와 교래대첩이라는 독특한 생활문화와 촌락형성의 모티브를 생생하게 전달해주며 나그네들의 발길을 쉬어가게 만든다. 비자림 길을 가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혜택들인 것이다. 또한 중산간 마을은 낮은 구릉들 사이에 넓게 펼쳐진 들판인 뱅듸의 고향이며 숯을 굽고 장작을 마련하며 근면한 삶을 살아온 촌로들의 이야기는 덤으로 제공되기도 한다. 그뿐인가? 검은 화산회토로 구성된 밭에는 네모난 산담이 가운데 자리 잡아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공존하는 유토피아의 문화를 연출하고 땅을 일구는 농부들의 땀방울을 들은 지나가는 나그네들의 시선을 모은다. 

길은 오름의 고향이라 불리는 마을을 지나면서 더욱 제주의 경관과 향토문화를 채색하며 나그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 이곳이 제주도이구나 하는 마음을 들게 하는 곳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길의 종반부에는 검은색의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흑룡만리 제주 돌담이 최고의 예술품이 되어 제주의 땅을 수놓고 돌담이 키워내는 푸르른 작물들은 세상 속으로 운반되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훌륭한 먹거리가 된다. 돌담이 있어서 길이 아름답게 보이지만 길이 있어서 더더욱 아름답게 여겨질지도 모를 일이다. 길의 종착지는 바다와 만나 해녀들의 생활터전인 바당 밭으로 이어지면서 긴 여정을 마무리한다. 

한라산에서 출발하여 바다까지 이어지는 비자림 길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지겹도록 눈에 익은 모습이겠으나 또 누군가에게는 생소하고 특이하여 제주다움의 추억으로 오래 기억할 것이다. 그 길에는 제주의 자연과 문화가 오롯이 남아있어 제주다움을 가장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으며 제주의 오래된 미래를 생각하게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길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들이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장소이며 한권의 책과도 같은 풍부한 컨텐츠를 갖고 있는 장소이다. 그러나 최근 이 길의 삼나무들이 무참히 잘려나가 전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면서 비자림 길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들었다. 길 위에 존재하는 유무형의 것들이 이미 사람들의 마음속에 정서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반증이라고 본다. 잘려나간 삼나무의 모습들은 마치 내 살이 찢겨나가는 생채기의 아픔처럼 여기며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찬성이나 반대의 논리를 뛰어넘어 정신적 가치의 훼손이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분개하였으며 행정적 절차만을 고집하는 구태가 소통을 열망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분노감을 갖게 만들었다고 본다. 

제주의 길은 제주다움의 풍부해 질 때 그 가치가 높아지고 길을 가는 것만으로도 제주의 자긍심을 갖게 만들어 준다. 단지 이동수단의 원활한 면만을 고려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생각을 버리고 어떠한 길이 우리가 걷고 싶고 달리고 싶은 길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여야 한다. 찬성 또는 반대의 논리를 벗어나 많은 사람들에게 비자림 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잘려나간 삼나무가 어쩌면 제주의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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