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추사관 제4전시실 모습.

인생에 있어 정점을 찍고 있을 당시였다. '유배'라는 무거운 사슬에 발목이 잡혀 외딴 섬 제주까지 내려왔던 이는 현실을 부정하고 괴로워하는 대신 겸허를 익히고 나름의 해학으로 시간을 주무른다.

평생 다시 살까 싶은 귤 밭 한 가운데 낡은 집에 '귤중옥'이란 당호를 지어 부르고 '작은 창가에 빛이 밝으니 나로 하여금 오래 머물게 하네'(소창다명 시아구좌·小窓多明 使我久座)라 노래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던가.

조선후기 대학자이자 예술가인 추사 김정희의 제주 유배시절 작품과 해배 이후의 작품 등을 통해 그의 삶과 예술을 품을 수 있는 기회는 여간해서 놓치기 아쉽다.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제주추사관은 오는 10월 말까지 '추사를 만나다' 전시회를 연다.
이번 전시회는 제주추사관의 소장품 가운데 40여점을 추려서 소개한다.

'소창다명…'은 그 의미에 더해 추사체를 완성하기 이전 추사의 기품을 녹여낸 예서체의 멋을 엿볼 수 있다.

박진성 시인의 산문집 「이후의 삶」을 몇 세기 앞서 문자와 활자로 옮겨낸 듯한 감성도 느낄 수 있다. '무언가를 쓸 수 있다는 건 살아낼 힘이 있다'는 말을 되새김하다 보면 그날 그 때 추사의 마음에 가 닿는다.

한편 제주추사관에서는 매주 월요일 정기휴관일과 설날, 추석 당일을 제외하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상설 관람할 수 있으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매 정시마다 전시해설이 진행된다. 문의=064-710-6657. 양경익 기자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