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영 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챕터 대표·논설위원

최근 관세 보복을 동원한 중국과 미국의 대치 상황은 단순한 무역 전쟁 차원을 넘어 글로벌 양대 파워 사이에 전개되는 '신냉전'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의 관세 인상에 즉각 대응하는 중국의 보복관세 조치는 전형적인 무역 전쟁 양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을 더 깊이 살펴보면 중국 주도의 글로벌 무역 운동장 질서를 고르게 한다는 차원을 넘어 양국 관계는 물론이고 나아가 글로벌 경제와 국제 질서의 안정성을 뒤흔들 정도의 잠재적 폭발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신냉전이라는 표현이 전혀 지나쳐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고관세 폭탄 논리는 얼핏 단순하다. 한마디로 중국의 무역 행태가 불공정하다는 주장이다. 중국이 막대한 수출기업 보조금, 내국시장 접근성 제한, 위안화 환율 조작 등을 일삼고 있기 때문에 관세 폭탄을 동원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거칠 것 없어 보이는 행보로 더 담대한 의지와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중국의 정부주도형 경제개발 모델이 부조리할 뿐만 아니라 미국이 그동안 지탱해 온 개방적이고 공정한 글로벌 경제 질서에 반한다는 판정을 내렸음을 공언하고 있다. 덧붙여 테크놀로지 분야에서도 글로벌 리더의 지위를 노리는 중국의 야심이 미국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판정으로 또다른 전선을 펴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중국을 매섭게 몰아치는 트럼프 행정부의 채찍질에는 전례 없는 수단들이 동원되고 있다. 우선 중국의 행태가 '비합리적'이고 '미국의 교역 행위를 제한'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지난 1974년 통상법 301조를, 중국의 행위가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다며 지난 1962년 통상확대법 232조를 발동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말 미정부는 국방안보전략 문건으로 중국을 미국 주도 글로벌 질서에 타격을 가하려 작정한 이른바 '수정주의 국가(revisionist power)'로 분류했다. 이에 따라 중국 기업들인 알리바바의 머니그램 인수건 무산, ZTE와 화웨이 제품의 미국 시장 진출 차단이 이뤄졌으며, 심지어는 중국의 영향력에 있다는 이유로 싱가폴 기업이 인수한 미국 거점의 반도체업체 브로드컴의 퀄컴 합병 시도 역시 무위로 돌아갔다.

이쯤이면 이전 시기 미국이 유지해온 중국과의 윈-윈 추구 정책은 이제 트럼프의 선택지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바야흐로 미국과 중국 양측 모두 승자가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는 전통적 접근에서 벗어나 미국이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중국은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일방적 선언을 한 셈이다. 지난 1972년 닉슨의 방중 이래 미국 정부는 대중국 유화조치를 통한 중국의 글로벌 체제 편입 유도가 미국 경제 뿐만 아니라 중국의 경제 및 정치 발전에도 좋고 나아가 세계 평화와 안정성 제고에도 이롭다는 일관된 입장을 유지해왔다. 지난 2000년 클린턴대통령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축하하면서 중국을 주요 교역 파트너로 인정하면서 '중국은 민주주의의 최고 가치인 경제적 자유까지 수입'하게 됐다며 찬사를 보냈을 정도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세계무역기구에 보낸 서신에서 가입이래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와 글로벌 경제체제를 위협해왔다는 주장을 펼친다.

미국의 대중국 공세를 우려하는 쪽에서는 결국 수입품 물가 상승 여파를 가늠한 뒤 경기 침체를 경고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적어도 미국 경제에는 그런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과 벌이는 신냉전이 과거 미국이 소련과의 냉전에서 맛본 꿈 같은 승리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무모한 것이다. 냉전기 소련 경제는 미국주도 무역체제와 철저히 이격돼 있었지만 지금 중국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 근본적 차이다. 일례로 국제통화기금(IMF)의 추산에 따르면 2017~2019년 기간 동안 글로벌 국내총생산(GDP) 성장분 가운데 중국 경제의 몫은 무려 35%에 달해 미국 몫 약 18%를 훌쩍 넘는다. 덧붙여 전체 유로존은 8%, 한국 2%, 일본은 고작 1.5%에 그친다. 미국 조야에서 그래도 일정 시점이 되면 매를 거두고 중국을 살살 다뤄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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