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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탑] '피해자다움'의 반전고두성 편집상무
고두성 기자
입력 2018-09-04 (화) 15:21:43 | 승인 2018-09-04 (화) 17:44:21 | 최종수정 2018-09-04 (화) 18:50:43

지난해 10월 제주에서는 필리핀 처제를 성폭행한 피고인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공분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필리핀 국적의 A씨(20·여)는 2017년 2월 18일 전모씨(38)와 예정된 언니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2016년 12월 30일 아버지, 오빠와 함께 제주도로 건너와 모두 같이 생활하던 중 이듬해 2월 15일 새벽 거실에서 잠자다 전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A씨는 언니 부부가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2월 23일 제주여성상담소를 통해 전씨를 고발했다.

필리핀 처제 성폭행 징역7년

이에 대해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는 지난해 10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강간 등 치상)으로 기소된 전씨에 대해 A씨가 저항하지 않았고 강간피해자로 보기 어려운 행동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수행비서에 대한 성폭력 혐의(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해 지난달 14일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과 아주 흡사한 결론이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조한 전씨의 1심 판결은 그러나 상급심에서 대반전을 이뤘다.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는 올해 3월 14일 원심 판결을 파기, 전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하고 12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소리를 지르거나 구조를 요청하지 않았더라도 이는 극도의 공포감 때문으로서 그로 인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협박이 없었다거나 피고인이 피해자의 동의가 있는 것으로 오인했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성폭력 이후 주변에 쉽사리 피해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예전과 다름없이 일상생활을 하는 모습은 친족관계에서의 성폭력사건에서 이례적이지 않은 점 등에 비춰 피해자가 성폭행 피해 뒤 단 둘이 차를 마시고 사진을 찍었다는 사정은 범행사실을 인정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전략) 사후적으로 보아 피해자가 성교 전에 범행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거나 피해자가 사력을 다해 반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가해자의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된다"는 대법원 판례도 제시했다. 이 판결은 지난 5월 30일 대법원이 피해자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최종 확정됐다. 

이처럼 피해자다움을 배제한 판결은 안 전 지사 판결과 달리 대체적으로 유지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수원지법 평택지원 형사4단독 이승훈 판사는 지난달 29일 여직원을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조모(86) 전 평택대학교 명예총장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피고인은 성추행한 사실이 없고 성추행 행위가 있었다 하더라도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지 않았으므로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는 최근 여직원을 강제추행한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에 대해서만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은 모 갤러리 대표에 대해 강제추행을 유죄로 인정하면서 원심판결을 파기, 징역 8월을 선고하고 역시 법정구속했다. 

'첫 미투 판결' 최종심에 관심

앞서 1심은 피해자가 추행 직후 즉각 항의하지 않고 피고인과 헤어진 다음 '조심히 들어가세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점을 무죄 근거로 들었다. 반면 2심은 "성폭행 피해자의 행동양식은 피해 당시의 상황이나 피해자의 처지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고 '피해자라면  당연히 취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행위'가 일반화·유형화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않고 안 전 지사의 위력은 존재하되 행사하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첫 미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안 전 지사의 최종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고두성 기자  dsko15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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