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 돌아온 것을 알려면 정치판을 보면 된다. 어제의 적이 하루아침에 동지가 되는 등 어떤 전조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 빈번하면 선거철이 임박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안방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매스컴에서 시시콜콜 중계해줄 정도이니 정치권의 소식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웬만한 정치평론가를 뺨치고도 남을 우리나라 사람들로서는 정치보다 더 재미있는 구경거리도 없을 터이다. 하기사 정치가 원천적으로 차단된 중국사람들은 조그만 차량사고에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야단법석을 떤다고 한다. 그것은 정치처럼 재미있는 것이 없는 사회라서 그렇다면 너무 역설적일까.

정치인들은 왜 헤어지고 합치는 것을 좋아할까. 그것은 개인의 역량때문이다. 어떤 집단에서 자신의 영향력이 떨어졌다 싶으면 박차고 나올 수 밖에 없고 혼자일 때는 힘을 합쳐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이다. 하물며 각 방을 쓰던 부부도 집에 강도가 들면 일심동체가 되어 대항해서 싸운다고 하는데 노련한 정치인들이야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를 잘 설명해주는 게 오월동주(吳越同舟)이다. 중국 오나라와 월나라는 옛날부터 원수지간이어서 백성들까지도 서로 미워하는 사이이다. 그런데도 두 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탔다가 뒤집힐 위기에 놓인다면 어쩔 수 없이 손을 잡고 위기를 벗어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또한 서로 동지가 되기 위해서는 공동의 적이 필요하다. 즉, 헐뜯을 상대가 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그래야 친해질 수 있고 대화도 술술 나올 수 있다. 함께 비난하는 것처럼 둘의 사이가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것도 없다. 더구나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는데다가 인간의 잠재된 공격욕구를 빨리 풀지 못하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서로 공격할 것이 뻔하다. 그러면 피차가 손해이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사는 요즘 창당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신당이라는 것이 과연 언제까지 가겠느냐는 것이다. 그 면면을 보더라도 도저히 합칠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하는 말이다. 이들에게 만약 공동의 표적과 투쟁목표가 없어진다면 또다시 ‘적의 적’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 아닌가. 그게 정치인들의 생리이다.<김종배·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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