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제주초가

하가리 초가. 자료사진

자연재료로 손수 지은 집
비바람 대응 유선형 지붕

안·밖거리 자립정신 상징
제주인 생활문화의 총체 

제주사람들의 삶의 보금자리인 제주초가는 바람의 산물이다. 초가를 주위 지형보다 낮은 곳에 웅크려 앉은 듯 낮게 짓고, 지붕도 모 없이 유선형으로 만들어 격자로 꽁꽁 동여맸다. 기단과 마루높이를 낮게 했고 지붕에는 용마름이 없다. 올레를 구불구불하게 만들고 마당을 중심으로 가옥을 마주보게 배치했다. 

생태적 건축

제주초가의 지붕은 한라산 기슭 초원지대에서 자라는 새(茅)를 사용했다. 태고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 지구상에 걸쳐 널리 이용되는 지붕의 형태는 이엉지붕(풀잎으로 덮은 지붕)인데 대표적인 것이 초가다. 이엉지붕은 가장 훌륭한 자연재료이면서 유선형이라는 장점이 있다.

모난 곳 없이 부드러운 형태는 거친 바람에도 안전하다. 초가 지붕의 새는 2년마다 한번씩 새롭게 이어야 하고 화재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초가는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새집증후군과는 거리가 먼 생태적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초가의 몸체인 바람벽은 다듬지 않은 큰 돌을 쌓고 짚을 섞어 반죽해 놓은 진흙을 채우며 난층(亂層)으로 쌓아 올려 만들었다. 제주의 흙은 화산회토이기 때문에 응집력이 약해 건축에 맞지 않다. 돌을 의지해 흙을 채워놓음으로써 강풍과 풍우를 이기는 바람벽이 완성된다.

제주초가를 만드는 재료는 모두 자연에서 채집된 것들이다. 돌, 흙, 나무, 풀, 넝쿨 등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간단한 연장으로 최소한의 가공으로 마무리해 사용했다. 숙련되고 고급스런 기술이 아닌 농민들이 주거를 위한 필요에 의해 손수 지었다. 요즘처럼 보여주기 위한 세련됨이나 기교도 없다. 이러한 과정이야 말로 초가의 순수하고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합리적 생활철학이 배인 공간

제주초가는 가운데 마당을 두고 안거리와 밖거리, 그리고 모커리 등으로 구성되는데 다른 지역처럼 '안채=여성', '바깥채=남성'의 영역이 아니라 세대별 공간분리를 보여준다. 부모가 안거리에, 자식 부부는 밖거리에 살았다. 제주는 외형적으로는 대가족이나 실제로는 핵가족인 가족제도를 지니고 있다. 자식 부부와 부모가 별개의 부엌을 소유하고 논과 밭도 따로 소유했다. 모커리는 살림집이 아닌 쉐막이나 헛간 등의 용도로 쓰였다. 

초가 내부는 상방(마루방)을 중심으로 제사 등을 모시는 큰구들, 수장공간인 고팡, 정지(부엌), 작은구들이 있다. 정지와 상방 사이의 챗방은 가족의 공동식사공간으로 여성들의 가사노동 동선을 짧게 하는 기능이 있다. 

또 본채 외에 안채의 뒤뜰인 안뒤, 텃밭인 우영, 눌을 쌓아두는 눌굽, 변소와 돼지사육 용도의 통시, 소를 키우고 농기구를 보관하는 쉐막, 대문 역할을 하는 정낭과 정주석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제주초가는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는' 새마을 운동 과정에서, 도시화로 인해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현재는 박물관이나 민속마을 등에서 원형을 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제주초가에는 안팎거리의 자립정신, 고팡의 조냥정신, 챗방의 남녀평등 정신, 정낭의 공동체의 신뢰정신 등이 구현된 생활문화의 대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제주특별자치도 「제주문화상징」, 「제주여성의 삶과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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