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미영 제주한라대학교 관광영어과 교수·논설위원

"스미마셍(실례합니다)" 지나가는 일본인에게 이야기를 걸었다. 이번 여름,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혼자 도쿄에 간 김에 필자가 '작은 실험'을 해 봤다. 지하철을 갈아타며 거리를 걸으며 지나가는 일본인들에게 묻고 또 물었다. 방향과 장소를 묻는 간단한 질문인데도 대부분 친절한 일본인들은 입장 곤란한 애매한 웃음을 띠거나 당황해 한다. 아예 못 들은 척 하기도 한다. 이 상황에서 문득  소위 세계 공용어라는 영어의 명성이 무색해진다. 그러나 일단 학회가 열리는 와세다대에 들어서는 순간 이러한 '영어의 굴욕'은 사라지고 대신 '영어 세상'으로 돌변한다. 주로 아시아권 대학 교수 및 연구자들이 참석해 과학, 교육, 심리, 언어 등 다양한 학제 간 융합을 논의하고 발표했다. 중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대만, 중국, 홍콩에서 온 교수들의 뛰어난 영어 실력에 주목하게 됐다.    

영어에 유창한 중국인 교수들을 바라보며 문득 영국의 언어학자 데이비드 크리스탈(David Crystal)이 한 말이 생각난다. "받아서 먹어라(Take it and Eat it)" 중국이 급속히 글로벌 경제로 편입하게 되면서 중국이 사용한 영어 전략이다. 즉 영어를 제2외국어로 받아들이면서 미국 주도의 세계 경제로 들어서는 도구로 사용하는 한편 '칭글리시(Chinglish·중국식 영어)'라는 영어의 현지화로 중국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중국 교수들의 영어를 관찰해 보니 학회에서 논문 발표 등 공식적 상황에서는 표준 영어를 구사하는 한편 식사를 하거나 잡담을 할 때는 영어 발음과 문법에 어느 정도 자유롭게 벗어난 중국식 영어를 말하고 있었다.  

중국은 아시아의 링구아 프랑카는 될 수 있을지언정 세계 언어가 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화교권에 속한 아시아 국가는 중국어를 제2외국어로 사용하고 있다. 중국은 4000여년 역사에 걸쳐 정치적 세력이 거의 아시아권을 벗어난 적이 없다. 반면 영어는 1500년의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외세와 접촉하면서 다른 언어를 수입하고 수출하며 성장해왔다. 사실 영국 제국은, 인도,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 아메리카, 아프리카, 전 대륙을 누비며 현지 언어를 흡수하고 영어를 수출했다. 근대 들어서는 미국 경제의 힘을 업고, 영어는 여행, 과학, 기술, 방송, 광고, 항공, 전자, 인공지능, 교통, 컴퓨터, 교육, 로봇, 등 산업 부분에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과 서구는  독자적으로 팽팽한 세력 균형을 이뤄왔다. 로마황제 클라우디우스가 영국에 기원전 40년에 켈틱족이 사는 영국에 군대를 이끌고 상륙했을 때 중국은 유교를 받아들였다.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했을 때(서기313)에 중국에 불교가 퍼지기 시작했다. 영국 앵글로 색슨족이 바이킹족의 침입에 시달리고 있을 때(AD8~10세기), 중국 당나라는 3세기에 걸친 황금기를 맞고 있었다. 영국이 프랑스의 노르만 상륙 후 프랑스의 지배를 받고 있었을 때(AD960~1279) 중국의 송나라는 관료주의를 정립했다. 

세계 시장의 큰 손이 된 중국인은 비즈니스 현장에서 교묘한 책략을 사용하며 공세를 펴는 흥정의 달인이 되기도 하지만, 뒷전에서는 조력자와 가족을 챙기는 따뜻한 주인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타고난 장사꾼이라는 말대로 중국인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실용주의면서도 중국 비즈니스는 중국 공산당이 만드는 게임의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최근 세계 시장을 장악한 글로벌 중국기업은 서구 기업에 맞먹는 세계화의 역동적 순발력을 보이면서도 중국 비즈니스는 여전히 베일 속에 숨은 정치세력(자오쟈런)에 의해 움직이기도 한다.

이러한 중국의 세계화와 실용주의로 인해, 중국이 강대국으로 등장하면서도 구태여 중국어만을 고집하지 않고 영어를 열심히 배우며 미국주도의 세계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학회에서 중국 교수들의 유창한 영어실력을 보며 새삼 중국의 영어 전략이 열매를 맺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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