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주 봉성교회 목사·논설위원

애월 한담공원에 장한철의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어려서부터 영리했던 선비는 마을사람들의 권유로 한양에 과거를 치러 가게 됐다. 지난 1770년(영조46년) 12월 25일에 29명의 일행과 같이 길을 떠났지만 겨울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오키나와까지 밀려간다. 왜구에게 식량을 빼앗겼으나 중국과 베트남에서 온 상인들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고 작은 배를 의지해 제주로 오려 한다. 하지만 또다시 전라도 청산도에 떠밀려 가서 8명의 생존자만이 남았다. 

주인공은 초심을 잃지 않고 한양으로가 과거를 보지만 낙방했고 제주로 귀향해 4개월간의 모험담을 담아 글로 남겼다. 역사 그리고 해양지리서로 큰 가치를 지닌 문헌이다. 해양문학으로도 뛰어난 작품이다. 그후 장한철은 다시 공부해 4년 후 과거에 도전하여 급제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글은 '표해록'이라는 표제로 널리 읽혔다. 바다에서 표류하면서 생긴 일들을 담았다는 뜻이다. '금남표해록'은 제주에 공직자로 파견됐던 최부의 아호를 따라서 남긴 글이다. 성종 때 문신으로 제주에서 재직하던 중에 부친상을 당해 제주를 떠나려고 한다. 지난 1488년인데 사나운 바다 때문에 배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출항하자 곧 제주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보름을 표류해 도달한 곳은 중국의 절강성 임해현 해안이다. 온갖 고초 끝에 중국에서 육로로 이동해 북경에서 황제를 알현하기도 하고 136일 만에 전원 무사히 환국한다. 

그는 임금의 명에 의해 그간의 상황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했다. 생생한 현장보고서에 해당되는 내용으로 환경과 풍토 그리고 습속을 상세하게 남겼다. 중국을 직접 가서 볼 필요가 없이 이 책을 읽으면 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중국에 당도하자 우선 왜구라는 오해를 풀어야 했다. 왜구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말은 통하지 않는 게 문제였다. 한문 능력을 활용해 필담을 주고받으면서 궁금한 일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인들로서는 옛날 고구려를 공격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일이 줄곧 두려움으로 남아 있었다. 눈치를 챈 조선의 지식인은 삼국이 하나가 됐으니 예전에 비해 훨씬 강한 나라라고 으스대기도 했다. 

함덕이 고향인 김기량은 배를 타고 육지와 제주의 포구들을 다니며 장사하던 사람이었다. 지난 1857년 항해하다 거센 풍랑을 만나 한 달 이상 표류한 끝에 중국 광동성 해역에서 구조됐다. 그는 홍콩에 있는 파리 외방전교회에 인도된다.  거기 머무는 동안 조선인 신학생에게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아 제주인으로서 첫 천주교인이 됐다. 고향에 돌아와 전교활동을 펼치다가 지난 1866년 거제도로 나갔는데 체포됐고 모진 형벌을 받았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 이듬해 교수형에 처해졌다.지난  2014년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고 광화문광장에서 124인을 시복한 124인 중에 김기량도 들어있다.  

뜻하지 않게 제주에 표류했던 외국인들도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멜 일행은 풍랑을 만나 상륙하는 과정에서 많은 손실을 입었다. 조선에 오랜 세월 억류됐고 구사일생으로 탈출해 표류기를 남겼다. 

바다로 나갔던 제주인들 중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은 대부분 바다에서 생을 마감했다. 일부의 사람들이 낯선 곳에 상륙했지만 살아 돌아온 사람은 극소수였다. 현지인들과의 의사소통이 안 되는 상태에서 온갖 오해를 극복하고 호의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상황을 뚫고서 살아남은 그리고 경험담을 전하거나 남긴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현지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배려하지 않는 경우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는 어렵다. 

예멘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난민심사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제 종결되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 현실이다. 따뜻한 시선과 배려로 제주사회가 세계에 답해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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