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21일은 UN이 지정한 '국제평화의 날(International Day of Peace)'이다. 이를 '세계평화의 날(World Peace Day)'이라고도 부른다. 지난1981년 유엔(UN)이 단 하루만이라도 전 세계에서 전쟁이나 폭력이 없는 날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평화의 날을 제정했으니 어느덧 올해로 37회째를 맞는다.

그런데 이 뜻 깊은 날을 앞두고 세계의 시선은 온통 평양에 쏠려 있다.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이면서 휴전국이란 불명예를 안고 있는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한반도의 미래를 가늠하는 대협상을 벌여 '9월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세계 시선은 남북정상에게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외신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공항에서의 정상간 포옹, 평양시민들의 열광 속의 카페레이드, 평양대극장에서의 기립박수 등 파격적인 장면들을 소개했다. 또한 무거운 주제였던 비핵화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평화와 번영으로 겨레의 마음은 하나!'라고 썼다. 그 서명 장소가 평양 소재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라는 점, 남과 북 겨레의 마음이 하나라는 글귀가 의미심장하다.

이념을 절대적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지난 1986년 국회에서 "대한민국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라고 발언했던 국회의원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무죄 판결을 받긴 했지만 우리네 역사의 갈피에는 그런 야만의 추문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그동안 남과 북은 한반도 평화의 당사국이면서도 당당한 주연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한반도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순간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남과 북이 손을 잡아 주도적으로 70년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마감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끊임없는 대화와 신뢰를 바탕으로 근본 원인을 하나하나 풀어갈 때 가능한 일이다.

우리 제주도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제주4·3의 원 뿌리도 한반도 분단과 냉전에 있다. 분단은 우리 민족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북위 38도선을 군사분계선으로 그으면서 시작됐다. 한반도는 점점 이념의 늪에 빠졌고, 결국 제주도민들도 여기에 휘말려 참혹한 희생을 치렀다. 

그런 4·3의 아픔이 이제 평화와 인권, 화해와 상생의 상징으로 거듭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5년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선포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4·3이라는 역사적인 큰 아픔을 딛고 진실과 화해의 과정을 거쳐 극복해나가는 모범을 실현했기 때문"이라고 그 의미를 부여했다. 

제주인의 염원 실현되길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4·3희생자추념식에 참석해서 추도사를 통해 이렇게 선언했다.

"이념은 단지 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에 불과했다. 제주도민들은 화해와 용서로 이념이 만든 비극을 이겨냈다. 제주는 깊은 상흔 속에서도 지난 70년간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외쳐왔다. 이제 그 가치는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으로 이어지고, 인류 전체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로 전해질 것이다".

우리는 지금 낡은 한반도의 냉전구조를 해체하기 위한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분단으로 남북의 주민들이 더 이상 피해를 보는 일들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남과 북 사이에 얽혀진 실타래도 4·3이 펼치는 평화, 화해정신으로 하나하나 풀어가기를 소망한다. 

70년전 이 제주 땅에서 스러져간 희생자들의 염원은 하나의 조국, 즉 한반도 통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제주도민들이 갈구했던 염원이 실현돼 제주4·3이 한반도의 당당한 역사로 기억되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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