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 충남대학교 교수·논설위원

부실한 물관리가 또 문제다. 최근 지역의 신규 대규모 유락시설의 하수가 역류하는 일의 전말을 보니 참 어처구니가 없다. 상수 소요량, 하수 배출량 등을 사기에 가까운 수준으로 낮게 책정해 인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과거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관여해 지역 내 추진하려던 큰 사업들이 각종 민원과 도정의 비협조로 난항을 겪고 있다는 관계자들의 호소에 필자도 지역 공무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도의 협조가 지나쳐 문제를 키우는 형국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감회가 든다.

지금도 큰 비가 내리면 말랐던 개천에 엄청난 양의 물이 흐르며 장관을 연출하지만 점점 가뭄 소식을 자주 듣는다. 인터넷 배너 광고에 따르면 지역의 공기업이 물장사로 몇 년 사이에 2000억원이 넘는 돈을 지역 사회에 환원했다하니 제주의 물은 그야 말로 현금 인출기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물에 관한 한 제주는 더 까다로워져야 한다. 당장 돈벌이 수단으로서의 역할은 전체적으로 보면 새 발의 피다. 제주 청정의 한 축으로써 얼마나 깨끗한 물을 확보할 수 있는가가 중장기적으로 미래 제주의 모습을 결정지을 것이다. 근래에 노정되는 문제들을 보면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필요한 양은 늘어 가는데 물이 점점 귀해지고 있다. 잘 처리하지 않으면 지하수와 해양을 오염시킬 사람과 가축의 각종 하수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최근 미국 동남부 지역에 초강력 허리케인이 폭우를 몰고 와 엄청난 피해를 줬다. 비바람이 집중된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피해 상황이 언론에 자세히 보도됐는데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이 대규모 돼지농장과 주변을 보여주는 사진들이었다. 대규모의 돼지 사육 축사들 옆에 축사의 수십 배가 되는 배설물 처리장이 보였다. 기사의 내용인 즉슨 폭우로 이 처리장의 흙벽이 무너지면서 처리 중인 배설물이 유출되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들 농장에서 발생하는 배설물을 물로 씻어내 처리장에 모아 혐기성 세균을 사용해서 자연 상태에서 처리하고 있다. 협소한 면적의 밀식 사육장에서 배출되는 배설물을 순전히 화학적인 방식에 따라 처리하는 것에 비해 친환경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땅이 비싸고 주거 지역에 인접한 제주지역 농장은 사육장의 몇 배가 되는 그런 시설을 만드는 것은 꿈같은 일일 것이다. 

그동안의 축산농장들의 배설물 배출 난맥상은 이제 잘 알려졌지만 과연 제대로 개선이 됐는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특히 이번의 개발시설 하수 역류로 드러난 어이없는 인허가 및 관리 현황을 보면서 불안한 느낌이 든다. 

고리로 연결된 사슬을 당겼을 때 사슬의 제일 취약한 고리가 버티지 못해 사슬이 끊어진다. 제주의 경우 개발의 한계를 설정할 때 하수처리가 취약한 고리로 설정해 적용할 수 있다. 청정 자연이 제일 중요한 자원인 지역의 특성상 예상되는 각종 하수와 쓰레기 배출이 얼마나 되는가를 따져 허용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난 몇 년 사이에 드러난 하수처리 용량의 한계와 돼지농장 배설물 문제를 비춰보면 이미 개발의 한계에 도달한 듯하다. 특히 자연적인 물 정화 필터 역할을 하는 곳자왈과 같은 자연 생태계를 개발해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는 추세가 계속되고 있어 갈수록 인공적인 하수처리의 역할이 커질 수 밖에 없다. 

현재 배출되는 하수를 제대로 처리하려면 조만간 제주 해안 지역의 상당한 부지가 하수처리장 시설로 뒤덮일지 모를 일이다. 결국 앞으로 총량을 늘리는 개발과 축산, 인구 유입은 제한해야 한다는 것인데 좀 충격적인 결론이다. 만약 새로운 개발을 원한다면 기존의 하수와 쓰레기 발생량을 줄이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지역의 공무원과 주민은 이런 현실을 직시해야할 것이다. 이번과 같이 속임수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하수에 찌들고 플라스틱 쓰레기 범벅인 제주를 후대에 남길 수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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