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희 제주특별자치도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

아침저녁 제법 쌀쌀한 기운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유독 이 가을이 더욱 깊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한 해 한 해 시간이 갈수록 이런 느낌은 더 진해지고 가까이 다가온다.

우리 인생의 가을 노년기, 내겐 아직 먼 단어라 생각했는데 바로 코앞에 성큼 다가와 놀랍게 우뚝 서있다. 어느 덫 60이 넘었으니 말이다.

어느 날 눈에 들어온 단어 러브 에이징(Love Aging),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 눈을 크게 뜨고 꼼꼼히 들여다봤다. "아하. 보험회사의 광고문구".

노년을 준비하기 위해 개인연금에 가입하라는 내용이었다.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이 돈이라 하지만 에이징을 이용한 얄팍한 상술이 좀 씁쓸하기도 하다. 그것도 달콤한 단어를 동원한...

또한 흔히 쓰는 안티 에이징(Anti Aging)이란 단어도 있다. 화장품이나 건강식품 대체의학 의료산업 등에서 매우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물론 더 건강하고 젊어지기 위한 노력은 인간의 본성이고 의료적으로 획기적인 발전이 되고 있는 부분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넘쳐나는 건강정보로 인한 혼란과 잘못된 지식 등도 혼재해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정부나 사회복지영역 그 외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즐겨 쓰는 단어 엑티브 에이징(Active Aging), 노년을 부담스럽고 힘들게 받아들이지 말고 좀 더 즐겁고 생산적으로 활발하게 긍정적인 태도로 바라보자는 매우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단어다. 이로 인해 많은 정책이 만들어지고 사회복지 제도가 마련되는 등 노인복지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단어이기도 하다. 평생교육제도와 노인일자리, 복지관 프로그램 등 현실적으로 노년기에 필요한 사회적 서비스가 실천되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다.

그러나 이런 설정은 면밀히 들여다보면 에이징이란 단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일정부분 기저에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고 준비해야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여러 가지 형용사나 기타 단어들을 동원해 에이징을 수사하고 현실에 반영하는 것이리다. 

작가 박완서는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물론 작가가 살아온 힘든 시대상황도 있었고 삶의 궤적에 무겁게 짓눌려 왔던 여러 가지 사정들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젊은 시절의 눈부신 사랑과 열정, 기대 그리고 그와 함께 부끄러운 여러 가지 실수와 잘못된 선택, 돌이킬 수 없는 과오 등 질풍노도의 젊은 시절보다 노년의 신체적 한계는 있지만 마음의 평안과 깊어진 혜안, 통찰, 관조의 힘을 비교했을 때 노년의 삶이 좀 더 귀하게 느껴져서는 아니었을까.

이제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올 것이다. 이 시점에 로마 철학자 키케로의 말이 생각난다.  "노년은 삶의 한 과정이고 삶의 원숙으로 가는 길목이다" 라고...

우리 사회가 노년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 더 진중하고 깊어지길 바라고 노년에 이른 우리 당사자들도 좀 더 침착히 내면을 바라보고 다져서 원숙함을 향해 나아가는 이 가을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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