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식 제주학연구센터장·논설위원

내년이면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된다. 지난 1919년 3·1운동은 일제강점기 거족적, 전계층적인 민족의 독립운동이다. 3·1운동은 독립국가의 지향을 봉건왕정이 아닌 민주공화정으로 설정함으로써 지난 1920년대 이후 독립운동의 방향을 새롭게 제시했다는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그 결과 같은 해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세워졌다.

3·1운동은 서울·평양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시작돼 전국 방방곡곡으로 확산됐다. 조천리 출신의 휘문고보 학생 김장환은 서울에서 만세 시위에 참여한 후 귀향해 삼촌 김시범·김시은 등 조천면의 유지들과 밀회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경향 각지의 사정을 알리고 동지들을 규합해 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지난 1919년 3월 21일 조천 미밋동산에 모여서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행진에 돌입했다. 3월 23일에는 조천리에서 함덕리까지 시위를 벌였고, 3월 24일에도 함덕리 장터에서 수많은 군중이 시위를 전개했다.

조천 만세운동에서 가장 주동적인 역할을 수행한 주역은 김시범과 김장환이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제주도 독립운동의 선구적인 인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해방 후 행적 때문에 국가의 독립유공자 선정에서 항상 제외됐다. 다행히 올해 김시범과 함덕 출신의 한백흥이 국가유공자로 선정됨으로써 뒤늦게 명예를 회복하게 됐다.

조천 지역은 3·1운동의 발상지일 뿐만 아니라 제주도 항일 민족운동의 거점이었다. 그러기에 지난 1991년 3월 1일 미밋동산 위에 3·1운동기념탑이 세워졌고, 지난 1997년 8월 15일 제주항일기념관이 같은 자리에 설립됐다. 그러나 재일동포 김봉각(조천읍 신흥리)이 기념탑 건립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출연했으며, 그가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김봉각도 아직 국가의 독립유공자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

항일기념관 역시 건립 21년째 되었지만 전시실의 확충, 방문객을 위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및 어린이·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 조천 마을 독립운동 사적지와의 연계 사업 개발 등 좀 더 역동적인 운영 방식이 요구된다. 조천만세운동 성역화 공원의 드넓은 공간을 활용해 제주 항일독립운동의 역사 기록물을 전시·교육하고, 일제강점기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특별 공간을 조성하면 좋을 듯하다.

조천 마을에는 만세운동의 거사 계획을 모의했던 김시우 선생의 집터, 만세운동 주역들의 생가 터, 항일 야학운동 유적 등이 산재해 있다. 일부 생가 터에 표석을 세워놓긴 했지만, 체계적인 관리와 운영까지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들 사적에 얽힌 이야기를 잘 엮어서 다양한 서적 및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한다면 조천은 제주의 항일독립운동을 상징하는 마을이 될 것이다.

더불어 제주도 3대 항일운동의 하나인 1932년 해녀항일운동에 대해서도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올해 광복절에 문재인 대통령이 해녀항일운동의 주역 5명 해녀들의 이름을 직접 부르면서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다. 제주도 내에서도 이번 9월 해녀축제 기간에 해녀투쟁 주역 3인, 부춘화·김옥련·부덕량의 흉상을 만들어 연두망 동산 기념탑 옆에 세움으로써 전향적인 기념사업에 추진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고순효·김계석 등 해녀운동 주역의 독립유공자 선정, 해녀운동 관련 사적지에 대한 고증과 기념 표석 설립 등 다양한 기념사업은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이제 내년 3·1절 100주년까지 몇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좀 늦긴 했지만 제주도 내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기념사업 계획의 수립과 실천이 요구되는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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