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close

제민일보

사이드바 열기
HOME 기획연재 걷기의 사유 사물과 풍경
기획/ 걷기의 사유 사물과 풍경 13. 바람 불어 좋은 날의 어떤 은유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입력 2018-10-01 (월) 14:38:29 | 승인 2018-10-01 (월) 14:46:08 | 최종수정 2018-10-01 (월) 14:46:08

숭어가 튀어오른다. 태풍이 다가오고 있단다. 수문을 열어둔 포구는 잔뜩 긴장한 채 아무 말이 없다. 멀리 배 한척이 가끔씩 뱃머리를 앞으로 밀어내다가 뒤로 물러서고를 반복하고 있다. 빨갛고, 노랗고, 하얀 부표들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긴장감이 팽팽하다. 지금 이대로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듯도 하다. 검사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처럼 초조함과 일말의 기대감 같은 것이 밀려든다. 

갈매기떼가 멀리서 꾸억구억 울음소리를 내며 바위 위로 모여든다. 뭔가 예감이 불길하다. 포구 앞에 머릿수건을 두른 청년 두 명이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차를 세운다. 빨간 소형차가 잠깐 휘청거린다. 청년들은 뱃전으로 가더니 앞으로 밀려간 배를 끌어당긴다. 좀 더 촘촘히 배를 밧줄로 잡아두겠다는 심사다. 소의 목을 잡아당기듯 청년들은 배를 끌어당기고 배들은 안간힘을 쓰며 제자리다. 부표들이 삽시간에 흩어진다. 수면의 움직임이 가빠졌다는 신호다. 팽팽한 긴장감이 수면의 복부를 ?켜켜이 가르고 있다.?내 눈자위에도 골이 깊어진다. 이제 올 것이 오고 있구나.

길가 돌담 비닐에 둘러싼 깻단들이 위태롭다. 늦은 가을걷이다. 태풍이 밀려오는데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 비닐 위로 소주병을 매달아 놓았으나 역부족이다. 전봇대에 기대선 나무들도 사정없이 휘청거린다. 오른편 왼편 바람의 방향은 서로 엇갈리며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이만하면 나뭇가지가 부러질만한데 잎사귀 하나 떨어지지 않고 있다. 바람의 방향을 따라 제 몸을 기울이고 있는 나무들의 생존법을 눈앞에서 본다. 사실은 온몸으로 뼈의 부서짐을 막아서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맹렬한 공격을 두 다리 곧게 세우고 끝까지 버티고 있는 것일지도. 그 속은 갈가리 찢기면서 말이다. 

나뭇가지들이 갈라진다 몸통에서 올라오는 몸을 찢으며 갈라진다 찢어진 자리에서 구불구불 기어나오며 갈라진다 이글이글 불꽃 모양으로 휘어지며 갈라진다 나무 위에 자라는 또 다른 나무처럼 갈라진다 팔다리처럼 손가락 발가락처럼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갈라져 있었다는 듯 갈라진다 오래 전부터 갈라져 있던 길을 거역할 수 없도록 제 몸에 깊이 새겨져 있는 길을 너무 많이 가보아서 훤히알고있는 길을 담담하게 걸어가듯이 갈라진다 제 몸통으로 빠져나가는 수많은 구멍들이 다 제 길이라는 듯 갈라진다 갈라지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듯 조금 전에 갈라지고 나서 다시 갈라진다 다시 갈라진다 다시 갈라진다 다시 갈라진다 다시다시다시 갈라진다 갈기갈기 찢어지듯 갈라진다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며 쉬지 않고 갈라진다 갈라져 점점 가늘어지는데도 갈라진다 갈라져 점점 뒤틀리는데도 갈라진다 갈라진 힘들이 모인 한 그루 커다란 식물성 불이 둥글게 타오른다 제 몸 안에 난 수많은 불길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맹렬하게 갈라지고 있다
-김기택, 「커다란 나무」전문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아침이 고요하다. 신발 한 짝이 도로 한복판에 떨어져 있다. 어젯밤 태풍을 보지 않았다면 필시 고양이 혹은 개가 물어다 논 것이라 우겼을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흘러 온지는모르겠으나 저도 삶의 반쪽을 잃고 망연자실이구나! 신발을 벗어 살짝 발을 대본다. 마치 신데렐라나 콩쥐인 것처럼. 턱없이 작다. 이를 어쩌나. 사람도, 고양이도 짝을 잃었다고 다 잃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발은 짝을 잃으면 다 잃은 것이다. 길가에 버려진 신발을 보면 왠지 서럽다. 부모를 잃어 망연자실한 전쟁고아 같다. 

토미 웅거러의 그림책 『곰인형 오토』가 생각난다. '곰인형 오토'를 통해 전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폭력인가를 말해주는 그림책이다. "나는 세상의 악,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웃음을 자아내는 유머를 무기로 사용하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2003년 2월28일, 에리히 케스트너상인 독일문학상을 프랑스인이 토미 웅거러가 밝힌 수상소감이다. 일흔이 넘은 토미 웅거러는 아직도 전쟁의 상처를 잊을 수도, 씻을 수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계속 피흘리는 이야기를 가장 유머스럽게 전하고자 한다고 껄껄껄 웃으며 말한다. "선한의지에서 나온 유머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서 세상 여기저기의 고통을 줄일 수는 있다. 세상은 무서운 곳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점점 나빠지고 있지만, 때때로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면서. 

태풍이 안전하게 물러나긴 한 것 같으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식이 마냥 안심할 바는 아닌 것 같다. 인니에서 1천여 명의 지진으로 인한 사망 소식이 들린다. 많은 걸 바라기엔 현실이 너무 훤해져버렸다. 겨우 바라는 게 있다면 이보다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빈다. 자연이 무서워졌다.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webmaster@jemin.com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icon
"제민일보 네이버에서 본다"

도내 일간지 유일 뉴스스탠드 시행

My뉴스 설정방법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