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가림 호서대학교 교수·논설위원

최근 한반도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이슈들을 보면 그 속도와 변화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지금도 북한의 비핵화와 남·북관계 진전, 그리고 북·미관계의 개선과 관련된 일들이 시시각각으로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 10개월간 적대적 상호비방과 핵실험 그리고 미사일 발사 등이 없었다는 이유로 한반도에 평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평화가 도래했다는 객관적 근거는 아직 없다.

남·북과 북·미관계의 개선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은 '운전대론'을 들고 나왔고, 스스로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며 지금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지난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양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청와대는 이를 남·북한 간의 실질적인 '종전선언'이라 의미를 부여했다. '4·27 판문점 정상회담'이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의 실질적인 출발점이었다면 이번 회담은 2라운드 개막의 성격이 짙다. 조건부 영변 핵시설 폐기 등이 담긴 '9·19 평양공동선언'을 바탕으로 9월 24일 뉴욕에서 진행된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설명했고, 북·미 간 교섭이 재기될 수 있는 여지를 확인하기도 했다. 이로써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 이후 교착 상태였던 북·미관계가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기대감이 크다. 만약 모든 일이 순조롭다면 제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김정은의 서울 방문과 연내 종전협정 체결이 뒤를 이을 전망이다. 

사실 지금까지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다루면서 기대와 희망을 가졌던 이유는 시간표에 따라 문제의 실마리를 풀 수 있다는 희망적 강박이 한국과 미국에 모두 존재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간선거, 트럼프의 임기 내 북핵문제 해결, 연내 종전협정 체결과 김정은의 서울 방문 등은 모두 설정된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9월 한미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문제 해결에 시간표를 상정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고, 북한 외무상 리용호도 유엔 총회 연설에서 "종전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응수하면서 북·미 간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형세다. 

남·북 정상이 평양선언에서 철도와 도로 연결 등 남·북 경제협력 시간표를 제시했고, 적대관계 종식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를 채택했지만 문제는 한반도가 아직 완전한 종전이나 평화의 상태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상황에서 모든 공간에서의 적대행위 중지를 담은 군사합의서에 대해 논란이 적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대비해야하는 말이 강조되는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손자병법'에서는 전쟁은 도박이 아니라고 했다. 즉, 감정이나 분노로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고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 전쟁은 싸워서 이기러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승리를 확보한 후 전쟁에 임해야 한다는 '선승구전(先勝求戰)'을 강조했다. 

손자는 승산을 알 수 있는 경우로 다음과 같이 5가지의 유형을 제시했다. 첫째, 싸워야 할 때와 싸우지 말아야 할 때를 알면 승리한다(知可以戰與不可以戰者勝). 둘째, 병력의 많고 적음에 따라 다양한 용병술을 구사할 줄 알면 승리한다(識衆寡之用者勝). 셋째, 군주에서 일선 병사에 이르기까지 위아래가 마음을 하나로 하면 승리한다(上下同欲者勝). 넷째, 만반의 대비를 한 뒤 준비가 되지 않은 적과 싸우면 승리한다(以虞待不虞者勝). 다섯째, 장수가 유능하고 군주가 간섭하지 않으면 승리한다(將能而君不御者勝).

한반도의 평화가 안겨다줄 미래에의 희망은 분단국가인 우리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고 이상이다. 하지만 큰 안목을 갖고 미래를 바라보는 전략이 우선되지 않는다면 그 가치와 이상은 악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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