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이튿날 새벽은 몹시 추웠다. 아마도 영하 14~5도는 되는지 사방도, 나목들도 모두 얼어 있다. 버릇 들여진 새벽 조깅을 여러 날만에 할 요량이었으나 커튼을 뒤지고 바깥을 바라보니까 움추러 들어서 침대 속으로 다시 들어가 여덟 시까지 자고 말았다. 여덟 시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다시 어제 그 장소에서 아침식사. 그런데 하필 아침상에 오른 두 마리 생선이 알밴 도루메기(도루묵)인 점은 의도적이 아닌지 고개가 꼬아졌다.

식사 후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부두로 나와 귤을 부려서 쌓아 놓은 창고를 돌아 보았다. 운반 중 여러 날이 걸려서 다소 그러리라고 예상은 했으나 상자가 찌그러지고, 상한 귤들이 너무나 많이 나온다. 결국 우리는 나중 기증서를 써준 때 27,500여 상자 중 1,900여 상자가 부패했음을 확인해 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정성이라 해도 포장의 문제, 운반 과정의 문제는 다시 한번 고려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도착한 날은 금요일이었고, 우리는 화물선이 귤을 부리고, 대신 일본으로 실어 갈 짚을 싣는 3일 동안의 주말을 오로지 남포의 외국인 선원구락부에서 '갇혀' 지내야 했다. '갇혀 지냈다'는 표현은 우리가 건물 밖 열 발자국 만 나가도 어디에서 지켜보고 있었는지 민화협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바로 따라 나왔기 때문이다. 무엇을 그렇게 숨겨 놓아야 하는지 그들은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우리의 카메라를 달라고 해서 그들의 구도에 맞춰 찍어 주었다. 동토(冬土)란 말은 전혀 허튼말이 아니었다.

일요일인 23일에는 날씨가 훨씬 풀렸다. 우리 일행 중 김선희씨는 방안에 있기가 답답하다고 선원구락부 앞의 대동강 변을 산책하다가 거기 나온 선원의 아이가 가여워 보여서 마침 갖고 있던 초코렛 하나를 쥐어줬었는데, 나중 그 아버지가 어딘가로 불리어 가는 것을 보았다.

대신 토요일은 오후 세시부터, 일요일은 아홉시부터 텔레비전이 방영 되었다. 게다가 그들은 <임꺽정>, <소년장사> 같은 여러 개의 비디오테이프를 갖다 주며 그것들을 보라고 했다. 이들 작품의 일부를 구경했는데, 듣던 바와 같이 애니메이션 제작에 매우 자신도 있고, 거기 치중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TV의 프로는 시작부터 끝까지 주체사상과 김일성, 김정일 우상화 선전일색이었다. 혁명 55돌, 그리고 오는 2월에 돌아오는 김정일의 58돌 준비위원회 구성 등 그야말로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런 중에도 가장 웃기는 것은 <김일성화(花)>, <김정일화> 같은 꽃을 지정해 놓은 것이었다. 마침 접붙이기에 의해서 <김정일화>를 만들어낸 식물학자를 소개하는 프로를 방영해 보여주었는데, 그 꽃은 제라늄 같은 꽃대에 모란 같은 붉은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또한 방영되고 있는 연속극은 <푸른숲>이라는 제목이었는데 그 배경은 눈 쌓인 벌목장. 거기에서 동료들 간의 애환과 그곳 인부의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연속극을 보면서 대동강 줄기를 따라 남포까지 오면서 양쪽 기슭의 산에 나무가 없고 민둥산이었던 데에 생각이 미쳤다. 그들은 자기들이 가진 자원을, 산의 나무들까지도 저렇듯 깡그리 갉아 먹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 가난한 북한의 백성들이 가슴 아팠다.

...낙심을 말아라. 전세계 무산자야
16억7천만의 무산정권 이룩된다.

그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가극 <피바다가>의 한 대목은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곳의 피라밋식 조직은 오로지 정상의 1인을 위하여 그 아래의 전체가 희생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음을 어쩌랴. 그리고 상층부에서 하부구조까지 그들 개개인은 생존을 위해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한마디의 비판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 아니던가. 아아, 반세기가 넘도록 굳어진 이 민족의 비극을 어찌 할 것인가.

TV를 보는 동안에도, 잠을 잘 때도 구락부 안의 전기는 예고없이 단전됐다. 그것이 대충 어림잡아 하루 열 번은 더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의 안내원은 이런 단전의 이유조차도 '미국 놈 탓'으로 돌렸다. 어째서 그러냐는 반문에 미국놈들이 수력발전소 건설을 원자력 발전소로 오해하고 못 짓게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3박4일 동안의 지루한 북한 체류가 끝나고, 우리는 1월 24일 정오께 통통선을 타고 미리 강상에 떠있던 화물선 <더불 럭>에 올라 며칠 전 서해갑문으로 들어갈 때의 역순으로 이날 오후 4시 갑문을 통과했다.

우리가 나오던 날에도 갑문 바깥 양 기슭 갯벌에는 수백 명의 군상들이 나와서 언 갯벌을 뒤지며 조개를 잡고 있었다. <오성찬·소설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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