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운동회는 가을 소풍과 함께 지금은 중년이 된 이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일 것이다. 먼지 쌓인 졸업앨범에 반드시 한 페이지 쯤은 사진으로 남아 있는 운동회의 추억을 들춰보면 지금과는 참 달랐다. 어찌보면 촌스럽고, 과격해보이지만 참 따뜻했던 순간들이다.

# 고적대 소리에 민속경기, 고난도 율동까지
음력 정월보름이면 행해졌던 오랜 전통의 민속경기 '차전놀이'는 지금은 볼 수 없는 초등학교 운동회의 풍경이다.

동부와 서부로 나눠 나무로 만든 동채 위에 대장이 올라서서 한 손으로 줄을 잡고 한 손으로 지휘하며 상대편 동채를 위에서 눌러 땅에 닿게 하면 승부가 난다. 

수십명이 동채를 들쳐 메고 앞으로 돌진하며 양 끝이 높이 부딪히는 광경이 장관을 이뤘다. 선선한 날씨에 학생들이 열기를 내뿜으며 씩씩한 기상을 돋보이게 하는 경기로 추억에 남아 있다.

요즘 아이돌의 '칼군무' 못지 않은 단체 체조와 춤도 인기를 끌었다.

학생들은 물구나무 서기를 비롯해 4~5명이 한팀으로 서로의 어깨·등에 올라 탑 모양을 만드는 등의 '고난도' 동작을 만들어냈다. 

어려운 율동일수록 한달 가까이 연습에 매달려야 했다. 

지금이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학창시절 단체로 땀흘리며 같은 목표를 이뤘다는 뿌듯함에 "그 때가 힘들어도 재미는 있었지"하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많다.

여학생들이 어르신들에게 화려한 부채춤을 선물하곤 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두 손에는 꽃그림이나 깃털로 장식된 화려한 부채를 들고 아름다운 동작을 구사하며 추면 절로 박수가 터져 나온다.

운동회의 반주는 고적대가 맡았다. 레크레이션 업체의 대형 스피커와 비교하면 작지만 멜로디언과 아코디언, 실로폰, 큰북, 작은북, 트라이앵글 등 음악시간에 배우는 악기들만으로 훌륭한 화음을 만들어냈다.

# 학부모·어르신들도 하루만큼은 축제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 동네 어르신까지 운동회를 손꼽아 기다린 것은 무엇보다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함께 참여하는 경기와 볼거리, 즐길거리가 다양했다.

학부모들은 이어달리기와 2인3각 등 여러 종목에서 아이들과 함께 구르고 뛰며 하루를 즐긴다.

입으로 사탕을 무느라 얼굴에 밀가루를 가득 묻힌 아버지들은 평소 근엄함 대신 아이들마냥 신난 모습을 보이고, 가는 세월 이기지 못해 이어달리기에 뒤처지면 보다 못한 아이들이 "아빠 힘내라"며 응원에 나서기도 했다.

마을 어르신들에게는 음식 대접은 물론 물건을 낚도록 하는 등의 효도경기나 큰 절을 올리는 시간을 따로 마련해 효와 공경의 의미를 보여줬다.

저학년 아이들의 공굴리기도 보는 것만으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커다란 공이 목표 지점으로 굴러가도록 선생님이 옆에서 목이 터져라 지도하지만 공은 아이들의 마음과 다르게 이리저리 샛길로 빠지기 일쑤다.

운동회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박 터트리기'였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오재미'라 불렀던 모래주머니를 열심히 던져 먼저 박을 터트리고 색종이들이 흩날리면 운동장이 떠나갈듯한 함성으로 뒤덮였다.

지금은 예전만큼 열심히 운동회를 준비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어려웠던 시절에도 하루 만큼은 모두가 웃고 즐겼던 '가을 운동회'는 여전히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김봉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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