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훈식 제주어육성보존위원·시인

지병이 있어 서울나들이 갔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외견상으로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중년 여인이 끄는 멋진 유모차를 들여다봤다. 나는 살만큼 살아서 시한부 인생인데 유모차에 있는 아기는 미래가 창창하므로 마음으로나마 축복도 해줄 겸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놀랍게도 폼나는 조끼와 무지개무늬가 그려진 반바지를 차려입은 강아지였다.

여인을 슬쩍 쳐다봤다. 어림짐작으로 아기 둘은 충분히 낳고도 남을 나이로 강력한 엉덩이 능선에 대포알 같은 앞가슴이라 몸매가 끝내준다. 그러니까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머리카락 길이도 비례해 짧게 다듬는데 아직도 긴 머리가 원시시대를 떠올릴 만큼 치렁치렁하다. 

모든 생명체의 몸은 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도구다. 아기를 낳으면 유방선부터 달라지고 업고 키우려면 허리도 굽게 마련이지만 미래의 조상인 아기를 낳아 키우는 사역이야 말로 생명의 근본이다고 하여 애완견을 평생 반려로 맞이하는 경우와 비견한다는 자체가 욕먹을 착상이긴 하지만 애완견 사랑도 인구 감소를 부추긴다는 생각이 든다.

진선미가 인간 덕목이긴 하지만 내가 청년시절만 해도 미인의 선호가 엄청나서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나돌 만큼 남자들이 미를 추구했다. 그리하여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뱃장이 키웠다. 마음에 든 여자를 만나면 여자의 입술은 초인종이라는 발상에 허락도 없이, 아니면 말고 라는 늑대근성으로 덥석 끌어안기도 했었지만 이제 그따위 만용은 미투라는 올가미에 걸려서 쇠고랑차기 십상이다. 

극히 일부지만 미혼을 고집하는 여성 중에는 애완견이 침실에서 똥을 싸거나 반긴다고 침을 질질 흘리면서 무작정 얼굴과 입술을 핥고 매니큐어를 칠한 발톱으로 블라우스를 긁어대도 마냥 아까워서 끌어안기 바쁘다. 자식을 못 믿는 세상이라 배필을 만나서 살림을 사느라고 스트레스 받느니 한번 뿐인 내 인생을 온전히 따르는 개를 보살피면서 우아하게 살겠다는 인생관을 누가 뭐라 하겠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음식문화가 발달하면서 개를 금지옥엽으로 여길 조짐은 있었다. 덩치가 커서 마당에서 집을 지키며 사는 개를 어여삐 여겨 회식 자리에서 일부러 먹다 남긴 뼈와 남들이 남긴 갈비뼈도 비닐주머니에 싸서 챙기는 모양새가 발전하여 개의 묘지까지 등장하게 된 거다.

옛날과 달리 개나 가축도 사료를 먹는다. 국산 사료를 주면 먹는 척 하다가 아픈 시늉을 하면서 거부하는 지능 높은 개에게는 뉴질랜드 초원에서 키운 어린 암소의 고기로 만든 무공해에 고단백 육포를 즐겨먹게 배려하는 주인도 있다는 소문이다. 사람이라고 인공사료를 먹지 말라는 법은 없다. 어쩌면 지금이야 말로 TV에서 먹는 프로가 황황한데 우주까지 방문할 시대가 오면 식단 차릴 시간이 아까워서 편리와 여유로움을 즐기기 위해 캡슬 형태의 영양정제가 식사를 대신할 거다. 

문명의 발달로 의술도 획기적인 전기를 맞이했다. 사람에게 직접 인공지능을 장착하기 위해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고 있다. 힘든 일을 필두로 집안 청소를 비롯하여 적진지로 돌격해 화약을 매설하는 일도, 불타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인명을 구조하는 일도 로봇이 대신하게 될 시대가 왔다. 

어쩌면 마음에 드는 여자나 남자와 짝을 이루기도 하겠지만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모를 만큼 애완견을 고급 샴푸로 목욕시켰던 유전자를 지닌 어느 한 쪽이 로봇인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전에 바둑고수가 알파고와 바둑시합을 했다. 아시다시피 알파고가 일방적인 승리를 하는 바람에 술렁거렸지만 최근에는 조용하다. 인간이 만든 로봇이 인간보다 뛰어나면 인간사회가 파괴될 조짐이 있어서인지 로봇 과학자들은 인공지능 로봇이 자율적인 의지로 인지와 추론으로 상황을 판단할 지능까지 터득하면 큰일이라고 로봇을 어느 정도 신뢰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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