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남 정치부 차장

조선시대 군주들은 평상복 차림으로 무예별감 같은 경호원만 대동한 채 은밀히 궁궐 밖의 민심(民心)을 살피는 '미복잠행(微服潛行)'에 종종 나서곤 했다. 일종의 백성과의 소통수단인 셈이다. 조선시대 군주들은 이 같은 미복잠행으로 백성들의 생활을 살펴 고충을 해결해주거나 국정운영에 반영했다. 성종(成宗)이 미복잠행 중에 청계천 광교에서 순박한 경상도 숯장수 김희동을 만나 감탄하여 벼슬을 내린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미복잠행은 지금 시대에도 유효하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국민의 살아가는 형편을 직접 살피고 그들의 이야기를 곁에서 들어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라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샤오츠(小吃·간단한 먹거리) 정치'로 유명하다. 2013년 중국 베이징의 만두집에 불쑥 나타난 그는 줄을 서지 말고 주문하라는 주인의 호의를 사양하고 자신의 차례가 되기를 기다려 국민들과 어울려 21위안(약 3600원)어치를 사 먹었다. 시진핑 주석의 소박한 모습이 중국 전역으로 퍼지면서 중국 국민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가 됐다. 

제11대 제주도의회가 출범 반년도 안 돼 도민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지난달 21일 제364회 임시회 마지막말 허창옥 부의장(무소속)이 대표 발의한 '신화역사공원 등 대규모 개발사업장에 대한 행정사무조사 요구서'를 부결한데 따른 후폭풍이었다. 특히 일부 의원들은 표결 자체에 참여하지 않거나 기권하는 행태를 보이면서 대의기관으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포기 했다는 비난이 일었다. 행정사무조사의 대상 등에 대해 논의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나름의 이유는 있었지만 결론적으로는 '도민들의 마음'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비난은 거셌다. 당시 도민들은 신화역사공원 하수역류 사태로 촉발된 대규모 개발사업장의 인·허가 과정에 상당한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16일 제주도의회는 제365회 임시회 개회했다. 11월 1일까지 원희룡 도정과 이석문 교육행정에 대한 행정사무감사를 하고 대규모 개발사업장에 대한 행정사무조사 요구서가 처리될 예정이다. 도민들이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주는 의회가 되길 기대한다. 민심은 천심이다. 강승남 청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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