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수 제주관광대학교 기획부총장·논설위원

몇차례 지방선거와 사회적 혼란을 겪으면서 제주에 원로가 없다는 말을 듣곤 했다. 제주의 어려운 사안을 해결해 줄 조언자나 지도자가 부족하다는 말로 이해가 가기는 하나 아무래도 궁색한 해석인 것 같다.

문제는 외형적인 원로계층은 늘어만 가는데 그저 단순히 고령자들만 늘어나는 늙어가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원로(元老)는 "한 가지 일에 오래 종사해 경험과 공로가 많은 사람 또는 예전에, 나이나 벼슬, 덕망이 높은 벼슬아치를 이르던 말"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원로배우, 원로가수, 원로체육인 , 원로종교지도자, 원로정치인, 원로변호사 등의 용어로 존경받는 시니어들을 그 분야 원로로 지칭해 왔다. 

그리스도교 신구약에서 원로는 나이나 경험, 지혜 또는 사회적인 지위 때문에 특별한 권위를 가진 신분을 얻고 존경을 받던 사람들로서 신앙 공동체를 이끌던 지도자들이었다.

특히 구약시대 이스라엘사회의 원로들은 정치, 종교, 법률, 군사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공동체 문제를 중재하고 조정하며 논의하고 결정을 내려 주는 일과 제사나 전쟁터에서도 한 몫을 담당하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앞장서 행동하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 원로(elder statesman)는 일본 제국 정부의 최고 수뇌에 있었던 중신들을 가리키는데, 법률상 그 정의는 없지만 천황에 의해 원로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고, 천황의 자문에 답하여 내각의 경질이나 후임 내각총리의 천거, 강화·동맹 체결 등에 관한 국가의 최고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중진들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원로라는 명칭의 공통점은 나이, 경력, 전문성, 지식과 지혜, 덕망 등의 분야에서 지도자적인 역량을 지닌 고령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 제주사회가 바라는 원로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우선 원로는 지식수준이 높기보다는 지혜로운 사람이어야 한다. 지식은 아는 것이고 지혜는 깨우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지식인들은 많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은 지식이 단순히 지식으로만 머물러 있고 지혜로 체화(體化)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원로는 자신의 이익보다는 제주사회의 이익을 우선하는 판단력과 공공성을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남을 돕고 조언하는 것이 자신이나 자기 주변의 안위를 위해 행해지는 것이라면 그건 사악한 노인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주변의 많은 종교지도자들을 존경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 사람들이 '공공선(公共善)'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 번째로 원로는 나무보다는 제주사회라는 숲을 보는 가까이 보다는 멀리 바라보는 혜안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상상력과 포용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거는 교훈이며 미래는 희망이라는 철학적 향기를 느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지능 중, 결정성지능(crystallized intelligence)은 평생을 걸쳐 축적되는 삶의 경험과 연륜을 발휘하는 지능으로 90대까지도 지혜로운 판단과 문제해결을 하는 지능인데 이를 스스로 잘 훈련하면 누구나 혜안을 가질 수 있다니 기대해 볼만하다.  

밭에서 일하며 세상을 읽는 노인의 지혜로움이나 학교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던 우리의 옛 어머니들이 자식들의 일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갔던 걸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냉정해 가는 제주사회 현실 속에서 자신의 이익과 입장만을 대변하는 노인이 아니라, 젊은이를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또 경륜과 지식을 바탕으로 나이에 걸맞는 무언가를 일관성있게 실천해 나가는, 그러면서도 공직자들과 후배들에게 지혜롭고 품위있는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시니어라면, 당신이 바로 원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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