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실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회장·문학평론가·수필가·논설위원

한국 모 대학에서 근무하는 사위가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 대학(OHSU·Oregon Health & Science University)에 1년간 교환교수로 결정됐다. 9월 초순 사위는 가족을 데리고 포틀랜드에 도착했다. 필자는 예정됐던 타주에서의 일을 마친 한 달 뒤 사위 가족을 찾아갔다.

딸은 외손자와 큰 외손녀를 등교시키고 필자는 막내 외손녀와 아파트 부근 숲 속 오솔길을 찾았다. 숲 속에는 여러 색깔의 단풍이 흐드러지게 물들어 있고 하롱하롱 떨어지는 단풍잎 사이로 가을 하늘은 새파랗게 익어 있다. 호젓한 길섶은 한여름의 푸른 삶이 만자홍엽(萬紫紅葉)이 되어 조락하고 있다. 

호수(Lake Oswego)가 보이는 이층집 식당에서 딸과 막내 외손녀와 함께 점심을 먹고 식당 앞 광장공원에 갔다. 광장공원 중앙에는 분수대가 있고 가로수와 벤치가 여럿 있다. 호숫가 주변 언덕에는 멋진 주택들이 조화롭게 있고 그 아래로 개인선착장은 보트가 하나씩 묶여있다. 막내 외손녀는 꽃장화를 신고 분수대에서 "외할아버지가 내 생일 선물로 사준 것"이라며 혼자 종알대고 있다.

광장공원 아래 철길로 천천히 달리는 긴 화물열차가 귀청을 때린다. 막내 외손녀는 두 귀를 막고 처음 보는 화물열차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광장공원 맨바닥에 신발을 벗고 꿇어앉은 중년 남성이 중얼중얼하다가 이마를 바닥에 대며 절하고 있다. 옆 벤치에 있던 히잡 쓴 중년 여성도 똑같은 행동을 한다. 이슬람 신도가 알라(Al-illah)에게 절하는 장면이다. 이곳이 어딘가. 남들이 다 모이는 도시 한복판 광장공원인데 처음 보는 광경이지만 당돌하고 생뚱맞다 싶다. 어디를 향해 절을 하는가 싶어 유심히 쳐다봤다. 눈앞에 있는 식당가는 아닐 것이다. 아마 그들의 성지 메카(Mecca)를 향해 절하는 것이라 싶은데 광장공원 한가운데에서 절하는 용기와 신앙심은 대단하다 싶다. 

막내 외손녀와 계단을 따라 타박타박 걸어 호숫가 백사장으로 내려간다. 

"외할아버지. 여기 감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푸른 나무숲과 단풍나무 사이 감나무에 감이 달려 있다. 그 아래 감이 제법 떨어져 있다. 막내 외손녀가 감 한 개와 단풍잎을 주어 들고 "먹어도 되느냐"고 묻는다. 순간 필자는 유년시절 외할머니댁 앞마당에 있었던 감나무가 떠올랐다. 노란 감을 주워 한입 깨물었다가 떫어서 뱉어 버렸던 기억이다. 외할머니는 땅에 떨어진 땡감까지 소금물이 담긴 항아리에 넣어 삭히곤 했다. 땡감이 삭으면 떫은 기운이 빠지고 달달한 감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고 항아리를 열어 몰래 꺼내먹기도 했다.

동사 '간다'와 영어단어 고잉(Going)의 준말은 '감'이다. 봄, 여름도 가고, 가을도 곧 저물 것이다. 또 하나의 감이 뚝 떨어진다. 잘 익은 감도 가고, 외삼촌과 외숙모도 가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가고, 아버지도 가고 없다. 세상만사 생명이 있는 모두는 언젠가 다 갈 것이다. 

아버지는 생전에 생멸전변(生滅轉變)을 꼭 '감'을 빗대어 넣고 말했다. 올 때는 순서가 있으나 갈 때는 순서가 없다며 "땡감과 잘 익은 감도 빠지고…나이 어린 형은 없어도 나이 어린 삼촌은 있다". 광장에서 절하던 이슬람 교인도 갈 것이다. 누군들 세상만사 자연의 순환을 보며 생멸에 대해 탄식하지 아니하리오.

호숫가에 잔잔하게 부는 바람은, 호수 위에 그려진 만추의 풍광을 흔들고 다시 화려한 그림을 그리게 한다. 잠시 세상을 잊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을 듯하여 모래사장에 막내 외손녀와 함께 앉았다. 

이제 겨울이 올 것이다. 옆자리에 누워 잠에 빠진 막내 외손녀는 몸을 뒤척인다. 밤새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숨을 죽이며 조심스럽게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 같다. 아무도 찾아올 길손은 없는데, 낯선 집 창밖을 서성이는 이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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