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馬)의 섬 제주의 독특한 유적 중 하나가 잣성이다. 잣성은 조선시대에 말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심해지자 중산간에 국영목장을 만들면서 경작지와 목장지대를 구분하며 축조한 돌담이다. 해발 150~250m의 '하잣'과 해발 350~400m의 '중잣', 해발 450~600m의 '상잣'이 있다. 하잣은 말들이 농경지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상잣은 말들이 한라산으로 올라가 얼어죽는 것을 막기 위해 쌓았다.

잣성은 그 길이가 약 280㎞에 달해 단일 유물로는 국내에서 가장 긴 선형(線形) 유적으로 평가된다. 제주의 중요한 목축문화유산이지만 방치된 채 중산간 개발 바람에 멸실·훼손돼 왔다. 어디에 어떤 형태로 잣성이 남아있는지 현황 파악조차 안된 탓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제주도가 2016년부터 실태조사에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난 2년간 동·서부 지역으로 나눠 진행된 용역은 최근 마무리됐다.

그런데 잣성의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위한 실태조사 용역이 졸속으로 진행됐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제주도의회 문화관광체육위원회 의원들은 18일 제주도 행정사무감사에서 이 문제를 집중 질타했다. 의원들에 따르면 동부지역 실태조사의 경우 제주 목축문화에 전문적인 도내 기관이 아니라 타지역 도시계획 전공자들이 모인 기관이 진행했다. 보고서도 현장 사진이 아닌 과거 잣성 관련 서적의 사진을 도용한데다 사진에 표시된 지번도 없거나, 같은 사진이 다른 지번으로 표시되기도 했다. 비자림로 확·포장 공사 과정에서 훼손된 잣성도 누락된 것으로 확인됐다.

잣성은 제주의 목축문화를 담고 있는 세계적인 유산이다. 돌·말과 함께 해온 제주인의 삶과 역사라 할 수 있다. 철저한 실태조사와 보존 대책이 필요하다. 그런데 엉터리 용역이라니. 게다가 허위 사실과 허위 정보를 보고서로 제시했으니 도의원들의 지적처럼 '범법행위'에 다름없다. 제주도는 철저히 진상을 파악하고 문제가 있다면 형사고발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