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스토리 / 김용수 제주마 보존 산증인

김용수씨.

아직 10살이 안 된 까까머리 소년이 고픈 배를 졸라매고 척박한 들판을 일궈내며 말과 함께 한평생을 보냈다.

새카맣던 머리카락이 어느덧 희어졌지만 한평생 말과 함께했던 김용수씨(76)의 눈은 어느새 크고 맑은 말의 눈을 닮았다.

제주 4·3 사건의 광풍이 몰아치고, 전쟁의 총성이 울리던 그 시절 앳된 소년 김용수는 이웃집 말을 돌보며 억새가 일렁이는 제주의 너른 들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남의 말을 돌보며 삯으로 받은 망아지를 밑천으로 12세가 되던 때 제주마 5마리로 시작해서 한때 300마리까지 사육하는 등 65년 넘도록 제주마와 함께하고 있다.

말을 풀어놓고 기를 목장이 없던 김용수씨는70세가 되던 해에 말이 뛰어놀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말 200마리와 소 100마리를 팔았고, 현재는 제주마 150여마리를 기르고 있다.

제주마와 함께한 김용수씨는 지난 1987년 제주마가 천연기념물 제347호로 지정될 당시 자식처럼 기르던 제주마 13마리를 축산진흥원으로 보냈다.

현재 제주도내 제주마 대부분은 김씨가 축산진흥원으로 보낸 제주마 후손일 정도로 제주마 혈통 보존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이런 공로로 김용수씨는 지난 13일 제주시 애월읍 렛츠런파크 제주에서 열린 '제15회 제주마축제'에서 제2회 헌마공신 김만일상을 받았다.

헌마공신 김만일상은 헌마공신 김만일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김만일은 조선 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으로 나라에 군마가 부족하자, 자신이 보유한 수천필의 말을 조정에 바쳐서 그 공헌으로 종 1품 숭정대부에 제수되고, 헌마공신이라는 호칭을 받았다.

하지만 김용수씨는 최근 천연기념물이면서 제주를 상징하는 제주마가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전한다.

농기계가 보급되기 이전에 제주마가 농사일을 도왔지만 농기계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음식점도 식용 말로 체구가 작은 제주마보다 몸집이 큰 경주마 또는 승마용을 선호하고 있다.

김씨는 "말 한 마리를 팔면 자식 대학 등록금을 충당할 수 있었던 시절이 엊그제 같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제주마와 함께한 고단한 일상과 녹록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김씨의 말 사랑은 대를 잇고 있다.
제주마와 한평생을 보낸 김씨를 이어 김씨의 둘째 아들이 제주마를 사육하고 있고, 김씨의 손자도 현재 대학에서 말을 공부하고 있다.

김용수씨는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후 혼자 동네 말을 관리해주면서 망아지 1마리를 받은 것이 제주마와의 인연"이라며 "밭에도 경운기와 트랙터가 말을 대신하고 있지만 제주마는 제주 사람들과 함께 한 가축"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들과 손자가 대를 이어 말을 기르고 있는데 개발이다 뭐다 하면서 목장이 점점 사라져 걱정"이라며 "아마 우리 후손들은 제주마를 기르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시대가 오지 않을지 걱정"이라고 전했다. 윤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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